남북한, 미국 간에 올 봄에는 ‘한반도 평화’의 꽃을 피울 것인가.

북한에 대해 냉정한 논조를 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월6일자 1면에 희망을 보여주는 기사를 실었다.

‘네오콘(neo conservatives)이 떠나자 부시의 외교정책은 온건 노선을 걷다’라는 주제목에 ‘라이스, 이란과 북한에 대한 정책 변경. 그러나 민주주의는 아직도 중요한 목표’라는 부제를 달았다.

한국일보 고태성 워싱턴특파원은 이 기사를 “미국 외교는 지금 신현실주의(neorealism)로 중심 이동” “체니 등 네오콘 퇴조하고 국제협력을 중시하는 라이스의 부상”이라고 해석했다.

부시 대통령이 올 1월31일(현지 시간)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민주주의가 없는 국가’로 여전히 간주했지만 원론적 언급에 그쳤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피그미’에서 지난해 ‘미스터 김정일’로 호칭한 것 또한 온건한 변화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네오콘의 핵심 인물이던 폴 울포위츠 국방 부장관, 이라크전쟁을 주도했던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 차관이 지난해 그만두고, 국무부의 대북 매파였던 존 볼턴 차관이 유엔 대사로 옮기고, 로버트 죌릭 부장관과 니컬러스 번스 차관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보좌한 이후로 두드러졌다.

특히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 루이스 리비가 ‘리크게이트’에 연루돼 물러난 것은 전쟁이란 불을 나르는 ‘불칸(vulcans:불과 대장장이 神 이름)’의 힘(체니+럼스펠트+네오콘 세력)을 변화시켰다.

그것은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부터 부시의 외교정책 조언자였던 라이스 장관이 네오콘의 강경 외교를 ‘네오리얼리즘’으로 바꾸는 배경이 됐다.

라이스 장관의 외교정책 변경은 북한 문제를 다루는 크리스토프 힐 차관보의 행동반경에도 유연성을 부여했다.

힐 차관보는 부시의 국정연설이 있기 전인 1월1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중 중일 때 베이징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비밀접촉을 가졌다.

비록 중국의 6자회담 대표가 중재했지만 두 사람은 중국을 배제하고 별도로 만나기도 했다. 위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은 체니, 럼스펠트 등 ‘불칸’의 외교권 장악 아래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미 국무부는 2월6일 한성렬 북한 유엔 차석대사가 “달러화 위조에 간여한 실무자를 처벌할 용의가 있다”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자 코멘트했다. “북한이 구체적 조치를 취하면 미국은 환영할 것이다”라고.

이런 사실에 대해 강찬호 중앙일보특파원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코리아 소사이트 회장· 1989~93년 주한대사 역임)에게 ‘환영’이란 의미에 대해 물었다.

“그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신호를 미국에 보낸 것”이라고 그는 대답했다. 이는 또한 북한의 태도변화에 대해 미국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라이스 장관도 변했지만 부시 대통령 자신도 무척 변한 것을 그레그 전 대사의 발언에서 읽을 수 있다.

아버지 부시가 부통령일 때 그의 안보보좌관을 지냈고 CIA국장일 때는 서울·사이공 CIA책임자였던 그레그 전 대사는 물론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도 잘 안다.

그러나 아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남북한과 세계에 대한 외교 비전이 없었다.

특히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2001년 3월 미국을 방문한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태도와 북한을 다루는 자세는 상당히 경직돼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시각이 ‘환영’이란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했을까?

엉뚱한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달 5일 한국에도 번역돼 출간된 로버트 메리의 ‘21세기의 제국을 꿈꾸는 미국, 그 야망의 빛과 그림자’라는 부제를 단 ‘모래의 제국’(최원기 중앙일보 한반도 뉴스팀장 번역)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지난해 6월11일 제3회 제주도 평화포럼에 참석한 최원기 팀장은 그레그 전 대사를 만났다. 그레그 전 대사는 그 자리에서 “초이! ‘모래의 제국’이라고 들어봤어”라고 물었다.

그것은 워싱턴에서 발간되는 계간 잡지‘콘그래션널 쿼타리(Congressional Quarterly)’의 발행인인 로버트 W. 메리가 2005년 5월1일 네오콘과 ‘불칸’이 대외정책, 세계문제를 주무른 미국이란 제국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한 책이었다.

12년간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기자로 활동한 후 의회뉴스를 다루는 ‘쿼타리’잡지에서 부장과 편집장을 거쳐 발행인이 된 로버트 W. 메리.

그는 “부시 정부는 부정확한 현실인식과 어설픈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즉 인간은 제도에 의해 바뀔 수 있으며 각국의 문화적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역사진보론에 빠져 있다”며 “역사의 종말, 자유의 확산, 민주주의 이식 같은 일련의 관념은 현실감각이 결여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그는 또 “제국주의적 충동과 민주주의 전파 이상(理想)을 결합시킨 네오콘 논리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고 비판했다.

메리는 라이스 장관에게 네오콘의 이상에 치우친 관념과는 다른 ‘보수주의적 개입주의’에 바탕을 둔 현실주의적 실용주의자가 되라고 권고했다.

아마도 라이스 장관은 이 책을 읽었을 것이고 또한 그레그 전 대사도 책의 핵심을 그에게 알려줬을 것이다.

이종석 신임 통일원 장관도 이 책을 구해 꼭 한 번 정독하기를 바란다. 책 속에 그레그 전 대사의 음영을 깔고서.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