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안갯속. 자동차 한 대가 좌우 방향등을 깜박이며 서행하고 있다. 뒷차는 앞차의 신호에 따라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며 안갯속을 헤쳐갔다.

그런데 앞차가 이상하다. 좌우 방향등이 아무렇게나 깜박이고 속도도 제멋대로다. 뒷차 운전자는 눈을 부릅뜨고 핸들을 잡았지만 온몸엔 식은 땀이 솟았다. 끝내 마음이 놓이지 않은 운전자는 차를 세우고 안개가 걷히기만을 기다렸다. 하루를 망치게 한 앞차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때 노무현 정부의 국정운영(앞차)을 자동차에 빗대 회자되던 얘기다. 국민(뒷차)이 정부정책에 혼돈을 느낄 만큼 일관성이 결여되고 독선적인 논리와 이념을 앞세워 과속을 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국민은 3년이나 지났지만 앞차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5ㆍ31 지방선거에서 가혹하리만치 매를 휘둘렀다. 매에선 날선 분노감이 진하게 묻어났다. 여당이 “싹쓸이만은 막아달라”며 읍소하고 매달렸지만 철저하게 외면했다. 앞차에 대한 분개가 너무도 큰 탓이었다.

흔히 한국 정치에는 민심이반을 불러오는 일관된 법칙이 있다고 한다.

첫째, 망각의 법칙이다. 선거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을 집권과 더불어 능력이 따르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잊어버리는 것이다.
둘째, 환각의 법칙이다. 지금은 죽을 쓰고 있지만 막판 뒤집기로 대선 승리가 가능하다는 ‘대선불패 신드롬’이다.
셋째, 혼동의 법칙이다. 선거게임과 통치게임을 혼동해 선거승리를 위한 편가르기와 인기영합의 선동을 통치에 이용하는 것이다. 5ㆍ31 선거에서 민심은 세 법칙들에 끔찍할 정도로 메스를 가했다.

참여정부는 지금쯤 그것을 알고는 있을까.

물론 여당이 미워 민심이 묻지마 선택을 한 한나라당도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