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벤 버냉키 의장

미국 중앙은행인 FRB(연방준비제도 이사회) 벤 버냉키 의장의 말 한마디에 세계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 5일 미국경제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는 물론 경기둔화 가능성까지 경고하며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강력히 시사한 그의 발언은 한순간에 세계 금융시장을 초토화시켰다. 가히 메가톤급 버냉크 쇼크다.

그의 말은 최악의 시나리오인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의 물가급등) 공포’로 확산되면서 여름 세계 증시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 것.

버냉키 의장의 발언으로 미국이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고, 이 경우 세계 증시에 흩어져 있던 미국의 자금이 다시 고금리를 찾아 미국 채권시장으로 회귀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유럽은 물론이고 남미, 아시아 증시가 동반 급락하는 도미노 현상까지 빚어졌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당일 다우평균을 1.77%, 나스닥지수를 2.24% 급락시키더니, 다음날인 6일에는 일본 증시를 1.81%, 인도증시를 2.51% 끌어 내리며 아시아 증시를 강타했다.

한국도 직격탄을 맞았다.

코스닥시장은 7일 한때 7% 가까이 폭락, 파생시장 관련 주문을 일시 정지시키는‘사이드카’를 발동한 끝에 전날보다 35.80포인트(5.98%) 하락한 562.91로 마감됐다.

유가증권시장의 코스피 지수는 개장과 동시에 1,300선이 붕괴된 후 전날보다 34.78포인트(2.67%) 하락한 1266.84로 마감했다. 작년 11월 22일 이후 약 6개월여 만의 최저치로 한국증시에 ‘검은 수요일’의 그늘을 드리웠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영향을 받은 때문인지 8일에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콜금리를 0.25P를 인상함에 따라 코스피지수는 43.71P(3.46%) 폭락하기도 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당분간 주가가 뚜렷한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횡보할 가능성이 높고 글로벌 경기 논란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는 지수가 상승추세로 돌아올 가능성이 낮다고 내다본다.

전문가들은 오는 28일로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향후 추세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FOMC회의까지는 미국 경제지표 발표에 따라 주가가 일희일비하는 변동성이 높은 장세가 펼쳐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버냉키는 하버드대를 수석으로 졸업,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후 프린스턴 및 스탠퍼드 대학에서 경제학교수를 지냈다.

2002년 8월부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통화정책 이사를 역임하다 올 2월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의 뒤를 이었다. 버냉키는 지명 당시 “그린스펀 시대의 정책과 전략들을 계승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린스펀이 위기관리의 필요성을 내세우며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미리 공개하는 데 반대해온 것에 반해 물가안정을 위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분명하게 설정하자는 입장이다.

그래서 지금 월가는 그린스펀의 은유적 표현과는 달리 버냉키 의장의 직설적 발언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가 높다.

어쨌든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금융시장은 당분간 ‘세계 경제 대통령’인 버냉키의 입을 숨죽이며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