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머리’가 ‘위’ㆍ‘앞’ㆍ ‘시초’ㆍ‘지능’을 뜻하는 은유, ‘동궁(東宮)’ㆍ‘중전(中殿)’이 ‘왕세자’ㆍ‘왕비’를 뜻하는 환유, ‘쌀’ㆍ‘손’이 ‘양식’ㆍ‘일꾼’을 뜻하는 제유가 있다. ‘뛰어난 안력(眼力)’을 ‘천리안(千里眼)’이라고 하는 과장(誇張), 단호히 거절하면서도 ‘약간 곤란하다’고 하는 곡언(曲言), ‘변소’를 ‘화장실’이라고 하는 미유(美喩)도 있다.
이 중에서 ‘과장’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특히 규모가 크고 호화스러운 건물을 비유할 때 으레 등장하는 것이 아방궁 아닌가. 지난 1992년 6월 25일, 문회보(文匯報)가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다. 중국의 산시성 고고학팀이 시안 근교에서 아방궁(阿房宮) 옛터를 발견하여 중국 고고학계가 흥분하고 있다고··· .
아방궁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두목(杜牧)의 ‘아방궁부(阿房宮賦)’에서 그 실마리나마 찾아보자. (인용문은 최인욱ㆍ한무희ㆍ송정희 선생의 번역을 참고한다.)
그 큰 지붕이 하늘도 해도 아주 가려 버렸다.
여산(驢山) 북쪽부터 얽어 가 서쪽으로 꺾이어 곧바로 함양성에 이르는 그 웅대한 아방궁!
위수(渭水), 경수(涇水) 두 큰 물이 유유히 성 안으로 흘러들고
다섯 걸음마다 누각이요, 열 걸음마다 전각이라.
이토록 어마어마한 위용은 문답법으로 이어진다.
저기 어인 샛별이 번쩍거리나. 궁녀들이 연 화장 경대 아닌가.
저기 검푸른 구름이 뒤엉겨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것은? 궁녀들이 아침에 빗질하는 삼단 같은 머리채 아닌가.
위수(渭水) 맑은 물 위에 가득히 떠서 흐르는 저 기름기는? 궁녀들이 버린 연지분 씻어낸 물 아닌가.
이어 작가는 패전국에서, 일반 백성에게서 약탈한 귀중품들을 아방궁 사람들이 함부로 다루는 행태를 질타하고 나서, 궁 안을 비교법으로 말한다.
들보에 걸린 서까래는 베틀에 앉아 베 짜는 여자보다 많고
번쩍번쩍 빛나는 못대가리는 곳집에 쌓인 곡식알보다 많고
들쭉날쭉 서로 물린 기와 이음매는 몸에 두른 옷 실자국보다 많고
가로세로 끝없이 이어진 난간은 온 나라의 성곽 수보다 많고
위의 문답법이든 비교법이든 바탕에는 과장법이 깔려 있다. 아니, 실은 당시의 궁이 워낙 웅대하여 과장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같이 웅장하고도 견고하여, 천년만년 영화를 누릴 것 같던 아방궁도 반기(叛旗)를 든 수비병과 한의 고조와 초의 항우의 손에 그만 무너지고 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무상계(無常戒)’ 한 구절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수미산도 큰 바다도 모두가 닳아 없어지나니
하물며 이 몸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을 어찌 벗어날 수 있으리오.
생명 있는 모든 것도 아울러 사라진다. 살아 있는 동안 마음을 당당하게 하고 맑히어 우리의 본향(本鄕)에서 산하대지(山河大地)의 참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