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뜻이 바뀌는 원인을 동기(動機) 면에서 흔히 다음의 몇 가지를 든다.

우선 ‘머리’가 ‘위’ㆍ‘앞’ㆍ ‘시초’ㆍ‘지능’을 뜻하는 은유, ‘동궁(東宮)’ㆍ‘중전(中殿)’이 ‘왕세자’ㆍ‘왕비’를 뜻하는 환유, ‘쌀’ㆍ‘손’이 ‘양식’ㆍ‘일꾼’을 뜻하는 제유가 있다. ‘뛰어난 안력(眼力)’을 ‘천리안(千里眼)’이라고 하는 과장(誇張), 단호히 거절하면서도 ‘약간 곤란하다’고 하는 곡언(曲言), ‘변소’를 ‘화장실’이라고 하는 미유(美喩)도 있다.

이 중에서 ‘과장’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특히 규모가 크고 호화스러운 건물을 비유할 때 으레 등장하는 것이 아방궁 아닌가. 지난 1992년 6월 25일, 문회보(文匯報)가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다. 중국의 산시성 고고학팀이 시안 근교에서 아방궁(阿房宮) 옛터를 발견하여 중국 고고학계가 흥분하고 있다고··· .

아방궁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두목(杜牧)의 ‘아방궁부(阿房宮賦)’에서 그 실마리나마 찾아보자. (인용문은 최인욱ㆍ한무희ㆍ송정희 선생의 번역을 참고한다.)

크기는 자그마치 사방 삼백 리 땅을 깔고 앉아서
그 큰 지붕이 하늘도 해도 아주 가려 버렸다.
여산(驢山) 북쪽부터 얽어 가 서쪽으로 꺾이어 곧바로 함양성에 이르는 그 웅대한 아방궁!
위수(渭水), 경수(涇水) 두 큰 물이 유유히 성 안으로 흘러들고
다섯 걸음마다 누각이요, 열 걸음마다 전각이라.
이토록 어마어마한 위용은 문답법으로 이어진다.
저기 어인 샛별이 번쩍거리나. 궁녀들이 연 화장 경대 아닌가.
저기 검푸른 구름이 뒤엉겨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것은? 궁녀들이 아침에 빗질하는 삼단 같은 머리채 아닌가.
위수(渭水) 맑은 물 위에 가득히 떠서 흐르는 저 기름기는? 궁녀들이 버린 연지분 씻어낸 물 아닌가.

이어 작가는 패전국에서, 일반 백성에게서 약탈한 귀중품들을 아방궁 사람들이 함부로 다루는 행태를 질타하고 나서, 궁 안을 비교법으로 말한다.

궁전 마룻대를 지고 있는 기둥은 들판에 밭갈이 나온 농부보다 많고
들보에 걸린 서까래는 베틀에 앉아 베 짜는 여자보다 많고
번쩍번쩍 빛나는 못대가리는 곳집에 쌓인 곡식알보다 많고
들쭉날쭉 서로 물린 기와 이음매는 몸에 두른 옷 실자국보다 많고
가로세로 끝없이 이어진 난간은 온 나라의 성곽 수보다 많고

위의 문답법이든 비교법이든 바탕에는 과장법이 깔려 있다. 아니, 실은 당시의 궁이 워낙 웅대하여 과장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같이 웅장하고도 견고하여, 천년만년 영화를 누릴 것 같던 아방궁도 반기(叛旗)를 든 수비병과 한의 고조와 초의 항우의 손에 그만 무너지고 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무상계(無常戒)’ 한 구절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면 이 사바세계는 불타고 무너질새
수미산도 큰 바다도 모두가 닳아 없어지나니
하물며 이 몸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을 어찌 벗어날 수 있으리오.

생명 있는 모든 것도 아울러 사라진다. 살아 있는 동안 마음을 당당하게 하고 맑히어 우리의 본향(本鄕)에서 산하대지(山河大地)의 참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