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우연히 동료 직원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들켰어요. 그리고 그날 저녁 회식이 있었죠. 다들 취기가 어느 정도 올랐을 때였어요. 절친했던 동료가 갑자기 맥주병을 휘두르더군요. 정신을 차렸을 때는 참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손발이 묶여진 데다 옷이 홀딱 벗겨져 있더군요.”

한 성전환자가 직장 동료들에게 당한 린치 사건이다. 성전환자들은 일상 생활에서 신분증 꺼내는 일을 가장 꺼린다고 한다. 혹여 아는 사람으로부터 이름을 불릴 때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모두 자신의 실체가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다.

심지어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린 성전환자 중에는 병원조차 가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육신의 고통보다 자신의 신분이 까발려져 얻는 심적 고통이 더욱 가혹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암 환자가 이럴진대 비록 건강한 성전환자들이라고 해서 금융기관, 관공서 등에 발걸음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런 저간의 사정을 감안하면 최근 대법원의 성전환자 성별 정정 허용 결정은 이 땅의 트랜스젠더들에게 ‘구원의 동아줄’이나 마찬가지다. 더 이상 신분증 때문에 음지로 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껏 그들이 겪은 설움이 일거에 씻겨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법이나 제도보다 더 바꾸기 어려운, 사람들의 선입견이 남아 있어서다.

그러고 보면 성전환자 문제는 우리 사회가 열린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시험대로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제는 가슴을 열어 놓고 그들을 바라보자.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