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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생각] '초토화(焦土化)'는 불탄 자리에서




① 폐허로 변한 마을·농경지/강원 평창 진부 ‘물폭탄’ 초토화 (ㅇ방송, 7.16.)
② 강원 전역을 초토화한 집중폭우 (ㅁ신문, 7.21.)
③ 집중호우로 강원도 내 도로와 하천 주택 등이 초토화되면서 (ㄱ신문, 7.25.)
④ 폭우로 집채만 한 바위까지 떠내려와 초토화된 고향집. (ㅁ방송, 7.21.)
⑤ 서남아시아를 초토화시킨 쓰나미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절망했던가. (ㅈ신문, 7.21.)
⑥ 지난해 여름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를 초토화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ㄱ신문, 7. 20.)


이번 여름, 강원지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빚어진 피해 상황을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나 본문의 일부다. 보도하면서 꽤 많이 사용한 ‘초토화’. 하지만 이 ‘초토화’는 쓰일 만한 자리에서 쓰인 걸까.

‘초토(焦土)’는 불탄 땅이다. 특히 전란(戰亂)으로 불에 타서 땅이 검게 그을리고 황폐해져 못 쓰게 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특정지역을 철저하게 불태워 버리는 군사작전”이 ‘초토작전’이다.

‘초토’의 ‘초(焦)는 “㉠타다 ㉡그을리다 ㉢태우다 ㉣탄내 나다”의 뜻을 지닌다. “눈썹에 불이 붙는 것과 같이 매우 급박함”이 ‘초미의 관심사’의 ‘초미(焦眉)’이고, “속을 태움”, “애를 태움”이 ‘노심초사’의 ‘초사(焦思)’이며, “몹시 애가 타거나 마음을 졸임”이 ‘초조(焦燥)’이다. 이처럼 ‘초(焦)’는 ‘불’이나 ‘타다’와 관련을 맺는다.

①~④의 비와 바람, ⑤~⑥의 비, 바람, 해일 또는 물 같은 자연현상으로 빚어진 상황을 ‘초토’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하기 어렵다. 이때에는 ‘폐허’나 ‘쑥대밭’ 정도가 무난하다. 이들 단어는 “건물이나 성 따위가 파괴되어 황폐하게 된 터”, “매우 어지럽고 못 쓰게 된 모양”의 뜻으로 당시 상황을 딱 그려내는 데에는 미흡하지만 근본이 다른 ‘초토’보다는 그래도 한결 낫다.

“초토가 되거나 초토로 만듦”의 뜻인 ‘초토화’가 쓰인 다음 용례는 자연스럽다.

⑦ 불이 다시 살아난 것은 오후 3시 쯤. (중간 생략) 의상대와 홍련암, 보타전 등을 제외하고는 낙산사의 대부분이 초토화됐다지요. (문화일보, 7. 21.)
⑧ (앞 생략) 이스라엘은 7월 12일 헤즈볼라의 거점으로 지목되는 레바논 남부지역 전역을 공습과 포격으로 초토화하는 전면전을 전개했다. (내일신문, 7. 26.)


이 밖에도 ‘초토’는 건축물 등이 불타 흔적 없이 사라짐을 비유하기도 한다.

⑨ 지금 당장 미디어 시장을 개방하면 방송의 공공성이 약화되고 콘텐츠 제작산업 초토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 (아이뉴스, 7. 26.)

‘아방궁부(阿房宮賦)’의 한 구절 ― 진시황의 혹정에 못 이겨 국경을 지키던 수비병이 반기를 들자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니, 한왕(漢王) 고조(高祖)가 의병을 일으켜 진의 요충지 함곡관이 함락되고, 초(楚)나라 항우(項羽)가 든 한 자루의 횃불에 웅장하고 화려한 아방궁이 불바다가 되어 석 달이나 탄 끝에 가련하게도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는 ― 이 ‘초토’의 전형적인 용례로 보인다(戍卒叫函谷擧 楚人一炬 可憐焦土)<주간한국 제2127호(6. 20.) 참조>.

인간에게 재앙을 주는 물, 불, 바람. 이 중 ‘초토’와 아주 가까운 건 ‘물’이 아니라 역시 ‘초토’의 뿌리인 ‘불’이라고 본다. 수해지역의 주민들이 폐허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전 국민이 힘을 모았으면 하고 바라 본다.



입력시간 : 2006/08/03 17:15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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