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칼바람이 매섭던 1995년 2월의 중국 헤이룽강(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시.

초저녁 후미진 동네 어귀에서 청산리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의 딸 김강석 씨를 만났다. 초췌한 모습에 양쪽 손에는 중국인들이 태우다 버린 땔감이 쥐어져 있었다. 너무 추웠지만 남의 눈에 띌까 어스름 무렵에 집어 왔단다. 순간 무언가 치밀어 오르고 울컥대는 묘한 감정이 뒤섞여 눈앞이 흐릿했다. .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오욕의 역사는 먼 이국에서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김 할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다.

이 땅은 어떤가. 가까스로 지난해 친일파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법을 마련해 체면치레를 했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3대가 겪는 각각 부와 가난의 대물림의 양극화는 여전하다.

친일파 후손들은 ‘과거사는 이제 더 이상 들추지 말자’는 병풍 뒤에서 부귀를 누리고 있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유공자라는 명예만 쥐고 있을 뿐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양극의 갭을 무시하기엔 청산할 역사가 아직 넓고 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울분이 느껴지는 것은 일제와 그 부역자들에게 목숨은 물론이려니와 재산까지 강탈당한 독립운동가들이 겪은 고초다. 일제의 핍박에 가족뿐 아니라 땅 한 뼘조차 건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동안 법의 미비를 들어 빼앗긴 그들의 재산에 대해 외면해왔다.

국민들도 친일파 재산 환수에만 소리를 높이다보니 친일파와 일제에 재산을 빼앗긴 독립운동가들의 재산을 되돌려 주는 문제에 대한 세밀한 관심을 놓쳤다. 그들의 후손들이 빼앗긴 조상들의 땅을 되찾았다는, 그래서 ‘진정한 광복’의 봄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최근 강탈당한 재산을 찾을 수 있는 특별법을 마련 중이어서 그 분들에게 작으나마 ‘봄’을 드릴 수 있는 발걸음을 떼고 있다.

미완성의 광복,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