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정재은 명예회장 7,000억 주식 2세에 증여… "세금 정당하게 내겠다"

기업의 투명 경영에 또 한번의 진일보가 이루어질 조짐이다. 그동안 재벌 회장들은 2, 3세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편법을 동원해 상속세나 증여세를 제대로 내지 않고 대물림함으로써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한 ‘부의 세습’은 재벌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재계에서 처음으로 그 편법 상속의 고리를 끊기 위해 결단을 내린 기업이 나타났다. 바로 신세계다. 신세계는 7일 정재은 명예회장이 보유지분 7.82%(147만4,571주) 모두를 아들인 정용진 부사장(84만 주)과 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63만4,571주)에게 나눠주었다.

이로써 정 부사장은 주식수가 175만7,100주로 늘면서 지분율이 4.86%에서 9.32%로 높아졌고 정 상무도 지분율이 0.66%에서 4.03%(총 75만9,983주)로 올라갔다. 말하자면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합법적으로 증여한 셈이다.

신세계의 8일 종가가 47만 4,000원이므로 시가로 따지면 7,000억 이상을 증여한 것이고 증여세율 50%를 적용하면 최소한 3,500억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명희 회장의 보유지분 289만890주도 단계적으로 물려줄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이뤄지면 2세들이 내야 할 상속·증여세는 1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신세계가 경영권 승계와 관련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의 세금을 내겠다”고 약속한 것을 정 명예회장이 실천한 것이다.

과거 현대그룹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족이 납부한 상속세가 300억원이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상속·증여세로 729억원을 내는데 그쳤다. 교보생명 고 신용호 회장의 2세들이 납부한 1,830억원의 상속세가 지금까지 최고 액수였다. 그것에 견주어 보면 신세계 2세들이 내는 세금은 가히 천문학적 액수라 할 만하며 정 명예회장의 결단은 재벌의 왜곡된 상속 문화에 일대 전기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부부, 정몽구 현대ㆍ기아차회장의 보유주식 총액이 현재 각각 2조원대 이상인 점을 감안한다면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내야 할 세금 규모도 각각 1조원대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재계 일각에서는 신세계의 지분 증여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부과된 세금을 납부하는 것인 만큼 정당한 행동”이라고 겉으론 환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경영승계를 위해 천문학적인 증여세를 낼 수 있는 기업들은 많지 않다”며 내심 껄끄러운 반응도 나오고 있다.

“현행 세법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대다수의 기업들은 경영권을 위협 받게 된다”며 “세율구조를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대안 마련을 은근히 요구하고 있다.

한편 정용진 부사장의 계열사 주식 헐값 인수와 관련 소송을 제기한 참여연대는 “앞으로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는지 지켜보겠다”며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는 일단 신세계 정재은 명예회장이 약속한 ‘투명 상속’ 실천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부의 정당한 대물림과 투명 경영을 가속화할 결단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민들도 앞으로 다른 기업들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시하고 있다.


송강섭 차장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