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한글날이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과 함께 국경일이 된다. 1946년 한글 반포 500돌을 기념하여 정부가 이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한글날을 기념했는데 1991년부터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국가 기념일로 바꾸었다. 이후 15년간 각계각층에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고자 여러모로 힘을 기울였던 바 이제 그 노력이 풍성한 열매를 맺은 셈이다.

이 뜻 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액면 금액 2만 원짜리 ‘한글날 국경일 제정 기념주화’를 이번 한글날에 발행한다. 한글날이 국경일로 제정된 것을 계기로 한글의 우수성을 나라 안팎에 널리 알리고 온 국민과 함께 기뻐하는 분위기를 만들려면 기념주화 발행이 필요하다는 문화관광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주화는 우리나라 기념주화 발행 역사상 처음으로 가운데에 사각형 구멍이 난 엽전형이다. 앞면은 세종대왕 때 제작된 ‘효뎨례의(→효제 예의;孝悌禮義) 별전(別錢)을 재현한 디자인을, 뒷면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음 열여섯 자를 조합한 디자인을 보인다. 주화의 테두리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모 스물여덟 자를 새긴다.

400여 종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옛날 주화 중 유일하게 한글이 또박또박 새겨진 위 별전의 ‘효제례의’란 ‘효제 충신 예의 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의 준말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 우애를 도탑게 하며, 나라에 충성하고 사람 사이에 믿음을 주며, 예절과 의리를 지키며, 청렴·검소하게 지내고 자신과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한다”는 뜻으로, 우리 전통사회의 기본 덕목이기도 하다.

한글과 돈의 만남. 세종대왕은 한글을 왜 이 별전에 넣었을까. 최현배 선생은 다음과 같이 그 뜻을 풀이하였다.

(세종대왕은) 경제 방면에도 한글을 사용하였으니, 이는 곧 세종조의 별전(別錢) ‘효뎨례의’돈의 주조이다. ‘고전대감(古錢大鑑)’에서는 이 한글 별돈을 세종조 경하전(慶賀錢)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도저히 이 돈을 지어 내신 세종의 참뜻을 반도 찾은 것이 못 된다. 이제, 나로서 이를 해석하건대, (1) 돈은 뭇사람이 생명같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돈과 병행하는 한글을 돈처럼 소중히 여기라 함이요, (2) 돈은 상하 귀천(上下貴賤)을 막론하고 각층 사회로 쉬지 않고 돌아다닌다. 돈처럼 한글도 널리 돌아 널리 퍼지라 함이요, (3) 이 돈으로, 이 한글로, ‘효뎨례의’를 백성에게 가르치고자 함이니, 어찌 그 얼(정신)이 높지 아니하며 그 뜻이 깊지 아니한가. 하고많은 조선의 별돈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다.<최현배 지은 고친 한글갈(改正 正音學>, 정음문화사, 1961년, 65쪽>

오늘날 한글은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서 사용하는 문자가 되었다. 만든 이, 만든 날과 만든 동기, 목적, 원리와 그 이념이 정리되어 기록된 유일한 문자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글 제정과 관련한 여러 사실을 알리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 문화 유산에도 등록되었다. 유네스코가 세계 각국에서 문맹퇴치 사업에 공이 많은 개인이나 단체를 뽑아 매년 시상하는 문맹퇴치 공로상의 이름도 ‘세종대왕상(世宗大王賞, King Sejong Prize)’이다.

지금부터 101년 전인 1905년, 일제가 우리나라에서 당시 사용하던 백동화를 새로운 화폐로 바꾸도록 하는 과정에서, 우리 상인과 농민이 한없이 절망했을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라에 힘이 없을 때 그 국민이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한글날 기념주화 발행이 나라 힘 키우기에 전념할 것을 한뜻으로 다짐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