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 최장기 총리인 요시다 시게루의 둘째딸의 아들인 아소는 1주일에 10권 이상의 만화를 읽는 만화광으로도 유명하다.

9월 20일 일본 자민당 총재에 예상대로 아베 신조가 선출됐다. 이를 두고 “그래도 외상이었던 아소 다로가 당선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이가 적어도 일본 밖에서서는 세 사람 이상이 있다.

특히 9월 9일 일본의 10여 년 불황 속에 전자상가에서 만화동산으로 변한 도쿄의 아키하바라에서 열린 총재후보들의 유세장에서 벌어진 광경은 더욱 이 세 사람을 놀라게 했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은 아베 관방장관보다 나이가 13세나 많고 후쿠오카 출신의 중의원 9선인 아소(65) 외상. 전후 일본 최장기 총리인 요시다 시게루의 둘째딸의 아들인 아소는 1주일에 10권 이상의 만화를 읽는 만화광으로도 유명하다.

9일 유세에서 마지막 연설자였던 그는 디카를 높이 쳐든 젊은 만화광들의 셔터 소리에 고무되었다.

“지단과 토티가 ‘캡틴 쓰바사’(일본축구 만화)을 읽고 축구를 시작했다.” “중동에서도 ‘캡틴 쓰바사’가 TV로 방영되고 있고, 이라크 자위대가 공격받지 않은 것은 급수차에 ‘캡틴 쓰바사’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기 때문이다.” “외국인 만화가를 대상으로 한 ‘만화 노벨상’을 만들자는 게 내 공약이다.”

이런 아소의 만화 같은 세계관에 걱정을 맨 먼저 한 사람은 2005년에 ‘고이즈미와 일본, 광기와 망령의 질주’를 낸 후지와라 하지메(1938년생. 프랑스 그루노블대 지질학 박사. 북빙양 석유개발 참여. 현재 LA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논평가. ‘간뇌 현상’, ‘일본 혁명’ 등 저자)였다.

후지와라 박사는 2003년 9월 2차 고이즈미 내각의 총무상이 된 ‘정계 최고의 만화 마니아’ 아소의 홈페이지에 실린 만화에 관한 글을 보고 놀랐다.

<질문: 지금 만화 잡지는 얼마나 읽고 있습니까.

아소: 그러니까 ‘매거진’, ‘점프’, ‘선데이’, ‘챔피언’ 등 두꺼운 것이 4권입니다. 또 ‘빅 코믹’, ‘오리지널’, ‘슈페리얼’ ‘스피리츠’, ‘모닝’, 그리고 ‘영 점프’, ‘비즈니스 점프’ 등이 있고 다른 것도 있습니다. 한 주에 대량 10~20권 정도죠.

질문: 정기적으로 비서가 사다줍니까, 따로 담당자가 있습니까.

아소: 운전사가 사다주는데, 월요일이 되면 ‘점프’와 ‘스피리츠’를 아무 말없이 사다 놓습니다. 화요일에는 없고 수요일에는 ‘매거진’, ‘선데이’, 목요일에는 ‘모닝’이 나오고 ‘챔피언’, ‘영 점프’도 나오지요. (···) 선거 때는 이동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차 안에서 쌓아두고 읽습니다.

질문: 유학할 때도 계속 만화잡지를 읽었다는데 누가 구해줬나요.

아소: 미국에 있을 때(스탠포드 대학원)는 어머니의 비서가 보내주었어요. 단단히 부탁을 해뒀죠. ‘매거진’과 ‘선데이’를 배편으로 받아서 즐겨 읽었지요. 화요일쯤 도착했을 겁니다. 매주 두 권씩 왔습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후지와라 박사는 이 인터뷰를 보고 개탄했다. 아소는 고이즈미와 같이 3세 의원(외할아버지, 아버지를 이은)이며 가쿠슈인, 스탠포드, 런던대학 경제학부를 나와 정치에만 치우치지 않을 인물이었다. 그런데 만화를 읽다니···.

후지와라 박사는 “만화는 그림을 좀더 단순화한 것으로 만화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쓰지만, 만화를 읽는 쪽은 머리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만화읽기로 사고력을 키울 수는 없다”며 “그가 이 정도로 만화에 빠져 지낸다면 언제 제대로 독서를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인간의 품성은 애독하는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신체를 운동으로 단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는 정신을 단련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서를 가까이 하지 않으면, 신체에 혼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지와라 박사는 왜 아소가 영혼을 팔면서까지 만화에 열중하는지를 짚지 못한 것 같다.

지난 7월 7일에 나온 일본 정치와 문화·사상사를 전공한 한상일(국민대 교수), 한정선(고려대 교수) 부녀 박사의 책-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조선병탄과 시선의 정치’에 그 해답이 있다.

한상일 박사는 미국 클래어몬트대학에서 일본정치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엔 ‘일본제국주의의 한 연구’로 한국정치학회 상을 받았다. 그의 딸 한정선 박사는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워싱턴대에서 일본사상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녀 박사는 2000년부터 6년 동안 메이지 유신 이후 현재까지 일본의 만화(특히 시사만화)가 일본 국민을 ‘제국주의의 행동가’로 만든 이유를 캤다. 메이지 이후 시사만화 186편이 수록되어 있다.

부녀 박사는 결론 내린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제국건설 참여를 촉구하는 ‘초대장’으로서의 만화의 기능은 오늘날의 일본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 만화는 인터넷의 등장에 힘입어 더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다. 오늘의 일본은 ‘만화왕국’으로 불리며 세계 문화 콘텐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만화는 국내에서도 독자의 연령층과 사회계층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2001년 국제만화시장에서 62%를 점유하고 있다. (···)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새로운 국가상 정립과 국가 진로의 모색이다. (···) ‘자학 사관’을 극복하려고 수정주의자들은 만화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의 수정주의자들이 만화를 통해 노리는 것은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미화 ▲이웃국가에 대한 과거 부정적 이미지(중국은 돼지, 한국은 닭, 러시아는 곰)는 되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의 핵 중 하나가 아소가 아닐까. 그래서 후지와라, 한상일, 한정선 박사는 아소가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떨어진 데 대해 안심하지 않았을까.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