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국정원장 등 교체… "널리 인재 구하라" 여당 충언도 외면

퇴임을 1년여 앞둔 노무현 대통령의 ‘오기 인사’가 절정을 이뤘다. 외교안보 라인을 새로 짜기 위해 단행한 신임 각료 인선을 두고 나도는 말이다. 일부에서는 예의 ‘코드 인사’, ‘회전문 인사’, ‘보은 인사’라는 또 다른 수식어도 갖다 붙인다.

‘이쯤 되면’ 청와대의 부름을 받는 게 꼭 가문의 영광으로만 볼 수도 없게 됐다. 당사자의 능력과 자질이 아무리 출중하더라도 ‘코드 구름’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자질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코드만 맞으면 감투를 쓸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감투의 무게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차기 유엔총장 선출, 북한 핵실험 이후 어수선한 국내외 상황 등 최근 정국을 일신하기 위해 1일 외교안보 라인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개각으로 외교부 장관에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 통일부 장관에 이재정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국방부 장관에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이 각각 내정됐다. 또한 김승규 국정원장의 사임에 따른 후임자로는 김만복 국정원 제1차장이 내정됐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 내정자는 참여정부 들어 욱일승천한 외교 전문가. 개인적 역량을 갖췄지만 노 대통령의 신임도 많이 작용했다는 평이다. 송 내정자는 ‘6자 회담’ 수석대표를 맡으면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6자 회담의 공로를 바탕으로 단숨에 차관보에서 장관급인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으로 영전했다. 더욱이 반기문 전 장관보다 외시 기수로 6기 아래일 만큼 이번 발탁은 눈에 두드러진다.

송 내정자는 청와대 안보정책실장 시절 이미 외교안보 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노 대통령의 신임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너무 청와대 코드만 맞추다 보니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는 미국”이라는 비외교적인 발언으로 미국의 반감을 사, 앞으로 한미관계에 또 다른 갈등요소가 될 전망이다.

김만복 국정원장 내정자는 45년 만의 첫 공채 출신 수장이라는 기록을 쓰게 됐다. 김 내정자는 그동안 국내, 해외, 북한 분야를 두루 거친 경력 덕분에 국정원 내에서는 만능 탤런트로 불린다. DJ 정부 시절 세종연구소로 파견 나갔다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정가에서는 김 내정자가 승승장구한 데는 이 전 장관과의 친분이 적잖이 작용했다고 본다. 부산 출신에다 친(親) 이종석 인물로 분류돼 그도 코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새로운 기록으로는 김장수 국방부 장관 내정자도 마찬가지. 현역 육참총장이 예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국방장관으로 발탁된 사례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육사 27기인 김 내정자는 군내 대표적인 작전통으로 1군사령부 작전처장, 합참 작전부장, 7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요직을 역임했다. 온화하면서도 강단 있는 리더십을 갖춰 군내에서 덕망이 높다는 평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성공회대 총장 출신의 정치인으로 재야 시절 명망을 얻었다. 2000년 민주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유세위원장을 맡은 데서 드러나듯 노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이 끈끈하다. 하지만 참여정부 초기 대선자금 수사 때 불법자금 전달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이번 통일부 장관 기용은 보은 인사의 성격이 짙다.

신임 외교안보 라인은 출발부터 험로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한나라당은 “안보 포기 개각”이라며 인사 청문회를 벼르고 있다. 열린우리당도 “널리 인재를 구해 드림팀을 구성하라”는 김한길 원내대표의 충언이 묵살돼 마음이 편치 않다. 게다가 국민들은 코드 인사에 대해 비판을 넘어 이젠 신물을 느끼고 있다. 밖으로는 한반도의 외교안보 지형이 지금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안갯속이다. 그들은 이 모든 난관을 모두 돌파할 수 있을까.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