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오전 통일부 국감장. 지난 7월 5일 북한 미사일 실험발사 직후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세작(細作)’이라고 몰아붙였든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질의에 나섰다.

“북한 편들기에 가장 앞서는 사람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북한 미사일을 협상용이라고 공언하고 북한 핵개발을 일리가 있다고 했다. 미국에 가서 금융제재 중단을 대놓고 요구했다.”

“이 정권은 김정일 정권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제도적 지원에도 노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없애려 했고 사실상 식물법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총련·범민련 등 이적 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무런 법적 제재가 없다.”

“김정일 추종 사상과 반미 의식을 퍼뜨리는 일에도 혈안이 되어 있다. 올 6·15 대축전 행사가 열린 2박3일간 광주는 완전히 해방구였다. 주체사상 선전홍보물이 거리에 돌아다녔다. 그러나 공권력은 없었다.”

“현 정부는 군사적으로 북한 정권을 열심히 지원하고 있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주한미군과 한미연합사 체제를 제거하기 위해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를 끄집어냈다.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권은 북한 핵개발을 막아내든지 아니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10월 25일 사퇴 의사를 밝힌 이 장관이 작심한 듯 즉각 반박에 나섰다. “정책 실패를 지적하면 답변하겠지만 친북좌파라고 말하면 안된다. (···) 모든 문제를 색깔론으로만 몰고가는 것은 아무리 국감장이라도 옳지 않다.”

“대북지원을 ‘퍼주기’라고 하는데 김대중 정부 이래 남북경제협력기금에 승인된 것만 지원했다.”

“일본이나 미국의 고위지도자들도 모두 북핵이 정치협상용이라고 말했는데 참여정부는 지지자들의 비판까지 받아가면서 국방비를 연 9%씩 증액 했다. ‘안보 불감증’이라 말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장관은 그날 사퇴이유를 밝히면서 “대북 포용정책 실패 때문에 물러나는 게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원래 학자출신이기 때문에 학계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와 민족에 봉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그가 도쿄 국제기독교대학 교수이며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상임 부회장인 니시오카 쓰도무가 10월 10일 한국어로 펴낸 ‘한국 분열-친북 좌파와 한·미·일 동맹과의 내전’속에 이 장관을 묘사한 부분을 읽었다면 어떤 답변을 했을까?

2005년 6월 24일 일본에서 나온 ‘한국 분열’을 번역한 원광대 사학과 이주천 교수는 이 책을 옮긴 이유를 썼다. “1977년 연세대에서 1년간 유학한 니시오카(1956년생)는 일본의 주사파에서 친한파. 지한파로 변했다. 그는 82~84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으로 일했다. 97년 한국에 ‘친북 좌파’ 정권이 들어선 후 ‘대한민국이 위험하다’고 외치고 있다. 이 책에는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충정이 구절구절 문장에 배어 있다.”

니시오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친북 좌파’ 및 한·미·일 동맹을 분열시키고 한국을 내전으로 몰고 가는 정권으로 보고 있다. 그 동력의 핵심에 이종석 장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그는 썼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마네현(縣) 의회에서 ‘다케시마(독도)의 날’을 제정하는 조례가 가결된 다음날인 3월 17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여 ‘대일 신독트린’을 발표했다. 이 독트린을 며칠 동안 철야로 정리한 사람이 뒤에서 자세히 언급할 국가안전보장회의 이종석 차장이었다. 신독트린에서는 ‘독도 문제’에 대한 도발은 과거의 식민지 침략과 동일한 형태의 행위로 인식하고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또 노 대통령은 4월 16일, ‘한국 국민들 가운데서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제일 큰 걱정이다’, ‘한국인이면 한국인답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며 친미파를 비난했다. (···) 한·미·일 동맹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고 설명한 정부 고위관리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노무현 정권의 반일·반미 노선을 추진하는 이종석 씨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도쿄의 반북 잡지인 ‘현대 코리아’의 편집장 출신인 니시오카의 ‘이종석’에 대한 추적은 거칠다. “1958년생인 이 차장은 1988년 대학원생 시절에 좌파 연구자가 만든 ‘한국정치연구회’에 들어가 당시 학계에서 터부에 가까웠던 마르크스 레닌주의 문헌을 공부했다. 북한 연구에 뜻을 둔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별도로 ‘독립문연구회’를 조직하여 북한의 원전을 읽으면서 전 북한 공작원인 북한연구가 김남식(2005년 사망. 한국전쟁 때 월북해 63년 남파됐다가 전향) 씨의 지도를 받았다.”

“박사학위 취득 후인 94년, 이 차장은 임동원(전 국가정보원장, 김대중 정권 때 비밀자금 5억 달러를 북한에 송금) 씨의 소개로 세종연구소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김대중 정권 이후 정권의 요직에 앉게 된 것도 임동원 씨 덕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니시오카는 이종석 장관을 “철심(鐵心)이 박힌 친북좌파 학자라고 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학계로 다시 돌아갈 이 전 장관은 니시오카의 추적이 잘못되었음을 학문연구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그게 나라를 위하는 길이다.


박용배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