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도 자각해야 했다. 잘못된 전쟁을 폭로하는 것은 CIA의 비밀작전을 까발리자는 게 아니다. 엉터리 근거로 미국민을 이라크 전쟁으로 내몬 비극을 폭로해야 했다.”

어떻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6년 11월의 중간선거에서 ‘일격’을 받았다. 그는 5년 넘게 함께 일해온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지난 9월 19일에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프랭크 리치는 부시의 재임 중 마지막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지껏 팔린 가장 위대한 이야기-진실의 소멸- 9·11에서 카트리나까지”를 냈다.

이번주 NYT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12위, 아마존 닷컴에 92위로 올라와 있다.

1949년에 워싱턴DC에서 출생해 하버드대 역사학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70년대 리치몬드 머크리라는 주간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타임지 등에서 연극과 영화 비평가로 일했으며 80년엔 NYT에서 수석 연극비평 기자가 되었다. 99년에는 NYT 일요일판에 다른 칼럼보다 2배나 긴 글을 쓰면서 이 신문 매거진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는 네 번째 책인 ‘여지껏 팔린···’에서 부시의 재임 5년여를 연극, 영화, TV, 신문을 비평하듯 분석했다. 결론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그의 관찰대로 부시가 일격을 맞고 하원, 상원, 주지사 선거에서 여소(與小)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전국에 책 소개를 하며 ‘여지껏 팔린···’을 읽은 독자들을 만났다. 투표 1주일 전인 11월 1일, 느낀 점을 밝혔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까지 예측하는 것은 우습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적어도 30%의 유권자를 빼고는 이라크에서의 전쟁을 반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번 투표는 이를 증명할 것이다. 민주당이 선거를 잘못 운영할지 몰라도 70%의 유권자는 공화당을 박살내려 할 것이다.”

그는 이번 선거가 9·11 이후의 미국의 잘못된 현재를 바로잡는 길임을 강조키 위해 책을 냈음을 독자들에게, 또 여러 잡지와 TV에서 거침없이 털어놨다.

부시 정부가 9·11후 94%의 지지를 얻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축출할 때만 해도 그도 부시를 지지했다. “그러나 2002년 여름이 되면서 부시는 ‘여지껏 팔린···’의 시초가 되는 이라크 전쟁을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들기 시작했다. 부시를 에워싼 칼 로브(백악관 정치고문, 선거 전략가) 등은 말했다. ‘기자들은 있는 현실만을 쓰지 말라. 현실은 세상이 있는 그대로만이 아니다.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안다면 현실은 만들수 있다. 우리는 만든 현실 속에 역사의 주역이 될 수 있다. 기자들은 우리들이 만드는 일을 지켜보면 된다’고”

프랭크 리치는 이런 ‘역사 만들기’를 책으로 치면 ‘만들어 파는 행위’로 봤다. 부시 정부는 이런 현실 만들기를 위해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침공에서 4월 9일까지 1,710건의 기사 중 13.5%만 민간인과 군인 희생자를 보도케 하여 현실을 조작, 왜곡했다. 종군 기사는 마치 전투교법처럼 죽음이 없는 것이 됐다.

그는 역사 만들어 팔기의 시초를 부시가 2003년 5월 1일 항공모함 아브라함 링컨호에 전투조종사 차림으로 착륙해 “이라크에서의 우리의 임무를 끝났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들었다. 그건 주방위군 조종사이면서 베트남 참전을 기피한 부시가 중동과 세계에 전쟁을 펼치는 ‘최고 사령관’임을 알리는, ‘끝나지 않은 전쟁’을 조작한 것이었다.

이 쇼는 할리우드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제작자, 공보전문 그룹이 각색하고 연출한 것이었다.

이에 앞서 2002년 여름부터 백악관에 구성된 ‘이라크 그룹’은 이라크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전(事前) 전쟁’의 실천에 나섰다.

리치는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가 2004년 9월 ‘공격 계획’이란 제목으로 부시의 이라크 전쟁 돌입을 쓴 책을 내기 전후에 부시 정부에 의분을 느꼈다.

우드워드의 ‘공격 계획’은 너무 부시를 영웅적으로 다뤘다. 리치는 특히 케이블 TV의 비평물을 살피면서 미국 언론의 추적 기사 초점이 너무 ‘고위급 인사’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바뀌고 있음을 찾아냈다.

FBI, CIA, 국방부, 국무부 등 각종 국가 안전기관에 근무하는 ‘낮은 계급의 전문가’들이 품고있는 회의에 대해 기존 언론은 무시하고 있었다.

이라크 침공의 도화선이 된 ‘이라크가 나이제르에서 우라늄 도입을 꾀했다’는 전제조건은 2004년 6월에 전 이라크 대사관 참사관이었던 조지프 윌슨(후에 나이제르 대사)이 ‘그렇지 않다’는 칼럼으로 부인했지만 많은 언론은 이를 무시했다.

우드워드도 ‘공격 계획’을 취재하면서 이 사실을 알았지만 “대단치 않게 여겼고 신문사에도 알리지 않았다.”

리치는 이에 대해 비평하고 있다. “윌슨 사건(윌슨이 CIA의 비밀요원인 밸러리 플레임의 남편이란 사실을 언론에 고의로 누설한 리크게이트 사건. 체니 부통령의 안보담당 루이스 리비가 파면됨)이 워터게이트와 다른 점은 반대당(민주당)에 더러운 작전을 벌이거나 스파이짓을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아들, 딸을 이라크라는 전쟁터로 보낸 것이다. 정부는 이런 전쟁의 전제를 조작했다면 그건 유죄다.”

“언론도 자각해야 했다. 잘못된 전쟁을 폭로하는 것은 CIA의 비밀작전을 까발리는 게 아니다. 엉터리 근거로 미국민을 전쟁으로 내몬 비극을 폭로해야 했다.”

프랭크 리치는 ‘여지껏 팔린···’을 잘 팔리지 않게는 했다. 이라크와의 다음 전쟁은 어떻게 될까? 그의 건필을 보고싶다.


언론인 박용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