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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페르베즈 무샤라프의 '射線에서'


적잖은 서방 언론인이 군사 독재자라고 일컫는 파키스탄 대통령 페르베즈 무샤라프(1943년 인도 뉴델리 태생). 지난 9월 25일 나온 그의 영문 자서(自敍) 회고록 ‘사선(射線)에서’는 아마존닷컴에서 판매량 2,707위를 기록했다. 120여 명이 서평을 쓸 정도로 찬반 논란이 있는 회고록이다.

특히 2007년 대선에 나갈지 여부조차 불분명한 현역 육군대장으로 대통령 직을 수행하는 그가 왜 현직에 있으면서 회고록을 썼을까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책을 읽어본 많은 서평자들의 의견은 거의 같다. “아프가니스탄, 이란, 인도,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1억7,000만 인구의 파키스탄 지도자가 9ㆍ11 이후 21세기 테러와의 전쟁의 중심부에 있는 무슬림 대통령으로서 ▲테러와의 전쟁 ▲민주주의 ▲핵 확산 ▲인권 ▲마약에 대한 신념과 대책을 잘 정리한 책이다”에 모아졌다.

결론적으로 비록 파키스탄보다 경제는 앞서지만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사이에 끼여 있는 한반도에서 2007년 대선에 나설 후보들은 꼭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똑똑한 후보라면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직접 말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무샤라프는 뉴델리의 중산층이 사는 마을의 회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1947년엔 독립 회교국가 파키스탄으로 갔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인도 남부의 천민을 상징하는 ‘퍼라이어(pariah)’ 신분이라고도 쓰고 있다.

그는 프랑스 미국계의 중ㆍ고등학교를 나와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와 영국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나는 ‘진정한 장교’이기보다 ‘대항적 장교’였다. (···) 나는 은수저를 쥐고 태어난 ‘엘리트 장교’들과 경쟁을 벌였다. 내 힘은 전투에서도, 지휘력과 상관ㆍ동료ㆍ부하들과의 원만한 관계에서도 뛰어나 육군참모총장에 오르게 됐다”고 회고했다.

1999년 10월 12일 육참총장으로서 스리랑카에 있는 파키스탄인들을 위로하러 갔던 그는 당시 총리였던 나와즈 샤리프에 의해 육참총장 해임 통보를 귀국 비행기 안에서 받았다.

그가 탄 비행기는 카라치 공항의 착륙이 금지되고 해외로 갈 것을 명령받았다. 이날 하오 4시에 발표된 해임 통보는 육군 군단장들의 “육참총장 해임은 헌법 위반이다”는 3시간 30분간의 쿠데타로 번졌다. 연료가 바닥난 그의 탑승기는 하오 7시30분께 카라치 공항에 착륙할 수 있었다.

사복 차림의 그가 영접나온 군 장성의 자켓으로 갈아 입은 후 행한 첫 번째 일은 이번 사태에 대한 대국민 성명을 직접 쓰는 것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았다. 총리 나와즈 샤리프가 대통령 권한에 속하는 육군 통수권을 자의적, 독재적으로 해석해 육참총장을 해임한 건 헌법을 위반하는 쿠데타이기에 군이 전면에 나선 것은 ‘반쿠데타’라는 것이었다.

그는 국가비상회의에서 헌법 제정이나 개정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1990년 때부터 지니고 다닌 ‘1864년 아브라함 링컨 미국 대통령이 헌법과 국가에 대해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때문이었다.

“대통령으로서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것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나라를 잃고 헌법을 지키겠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일반적으로 생명과 팔다리 중 어떤 것을 자를 것인가 했을 때 팔다리를 자른다. 생명을 끊어 팔다리를 살리지 않는다. 나라가 헌법적 위기에 있을 때는 국가를 먼저 구하고 헌법을 다음에 회복시키면 된다. 그래서 나는 나라를 구하는 일에 나섰다.”

그는 야당의 대표, 각군 참모총장, 국무총리, 대법원장, 종교계 대표 등 13인이 참석하는 ‘국가안보회의’에서 사태를 수습키로 하고 그 위원장이 되었다.

그의 자서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나라’와 ‘인민’이다. 2001년 9ㆍ11이 일어난 때였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12일 각의에 참석한 그에게 전화했다. “우리 편이 될 거요, 아닐 거요” 라며 즉답을 요구했다. “우리는 수년간 미국과 함께 테러와 싸웠고 고통도 당했다. 미국과 함께 할 것이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 대답이 협상용은 아니었다”고 적고 있다.

그는 미국과 전쟁을 한다는 가정 하에 이번 사태를 분석했다. “미국을 지원하지 않고 미국과 대결한다면 살육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없다. 첫째, 미국의 군사력은 파키스탄을 압도한다. 우리 군대는 파괴될 것이다. 둘째, 오일이 나지 않는 허약한 우리 경제력은 미국의 공격을 견딜 수 없다. 셋째, 한 민족이라는 관점이 적은 우리의 사회적 조건은 전 인민이 함께 대항하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도 미국에 대항할 수 없다.”

육군대장으로 대통령인 페르베즈 무샤라프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것은 ‘나라’를 위하고 ‘인민’을 위한 것이다. 나는 누구와 상의 없이 외롭게 결정했다. 파키스탄이란 ‘나라’를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인민’의 안정을 그 다음에.”

2007년 대선에 나서는 이들은 꼭 ‘사선에서’를 읽어 보길 바란다. ‘나라’와 ‘겨레’에 대한 절절한 생각이 그 책에 담겨 있다.



입력시간 : 2006/12/05 14:10




박용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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