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5연패 위업 일군 여자 핸드볼팀

“(허)영숙 언니,(허)순영 언니와 묶어서 유부녀 3총사라고 말씀하시는데 전 아줌마 소리 듣기 싫어요.”

2006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 핸드볼이 아시안게임 5연패 위업의 금자탑을 쌓으며 아시아 최정상 권좌를 굳게 지켰다.

강태구(부산시설관리공단)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13일(한국시간) 여자핸드볼 결승전에서 카자흐스탄을 29-22, 7점 차로 대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핸드볼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부터 이번 대회까지 단 한번도 놓치지 않고 5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특히 이날 금메달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구기종목에서 처음으로 딴 것이다. 한국은 주전 대부분의 키가 180㎝ 이상인 카자흐스탄을 맞아 힘과 체격에서 열세를 보이며 고전했지만 빠른 패스 플레이와 스텝, 개인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승리를 따냈다.

무엇보다 우승의 일등공신은 ‘유부녀 3총사’ 우선희, 허영숙, 허순영 3명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을 꺾는 데 앞장선 라이트윙 우선희는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듯 유난히 지쳐 보였다.

“3년차 주부의 몸으로 하루 7시간 훈련을 견뎌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게다가 고교 시절부터 시작된 빈혈 증세가 결혼 이후 더 심해져 약물치료를 받느라 그 흔한 보약도 입에 대지 못했어요.”

2002년 부산대회 때만 해도 그는 대표팀에 활기를 불어넣는 ‘젊은 피’였다. 2년 뒤에는 세계선수권 올스타로 선정된 데 이어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 10개와 맞먹는 은메달의 감동을 국민들에게 안겨줬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30골(전체 4위)을 터뜨리며 공격을 주도했다. 성공률도 무려 81%에 달했다. 경기 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의 왼쪽 팔목에는 카자흐스탄 수비수로부터 받은 강력한 견제 탓에 영광의 상처가 있었다. 왼쪽 팔목 살점이 살짝 떨어져나간 듯 핏자국이 선명했던 것.

얼굴은 동안이지만 우선희는 아테네 올림픽 직후에 결혼한 미시 스타다. “신랑이 다섯 살 많아서 아기를 빨리 갖기를 원했는데 이젠 좀 지쳤나 봐요. 일단 베이징 올림픽 뒤로 미뤘고 더 연장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라며 그는 방긋 웃었다.

“솔직히 체력이 부치지만 나이 티 안 내려고 열심히 먹고 운동해요.” 한국 여자 핸드볼 선수는 유럽서 스카우트 대상 1순위다. 세계 최고의 윙플레이어인 만큼 우선희는 유럽 클럽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소속팀이 창단된 지 얼마 안 돼 지금은 움직이기 힘들다. 팀을 우승시키고 안정된 다음에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다.

이번 대회 구기종목 첫 금메달을 일궈낸 강태구 감독은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가장 값진 금메달'로 꼽혔고, 2004년 아테네에서 온 국민을 울리며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을 땄지만, 이후 대접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한다. 불모지에서 캐낸 메달에 국민들은 감동했지만 이내 잊어버린 것. 그러나 선수들은 그때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여자 핸드볼은 소위 인기 종목과는 달랐고, '투혼과 희생'은 그대로였다. 강 감독은 “가정도 제쳐두고 제자 뻘인 후배들과 뒹굴며 몸을 아끼지 않은 아줌마들의 투혼 덕에 우승했다. 너무 고맙다.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베이징 올림픽까지 뛰어주기를 바란다”고 욕심을 내비쳤다.


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