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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제임스 처치의 '고려호텔의 시체'


좀 아쉽다.

2007년 새해를 맞으며 언론이 북한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 대선과 한반도, 세계에 미칠 영향을 점치면서 그와 그의 책을 거론하지 않은 점이다. 그는 익명의 제임스 처치다. 스스로 30여년 전 한국에 대한 연구자가 된 후 ‘서방의 정보요원’으로 일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국적도 표시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17일 제임스 처치라는 이름으로 280쪽짜리 ‘고려호텔의 시체’라는 미스터리 소설을 냈다. 이 탐정소설의 주인공은 ‘조사관 오’라는 북한의 사회안전부 소속 수사관이다.

이 소설을 읽은, ‘두 개의 코리아’를 펴낸 한반도 전문가이자 워싱턴포스트(WP) 외교 전문기자였던 돈 오버도퍼는 극찬했다. “비밀과 음모가 있는, 흥미를 끄는 소설이다. 말수 적은 조사관 오는 ‘고르키 공원’에 나오는 조사관 아르카디 렌코처럼 위험과 혼잡스런 세계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버드 대학 사회학부 석좌교수며 ‘넘버원으로써 일본’으로 일본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학계에서 이름을 떨친 에즈라 보겔도 격찬했다. “이 소설은 넋을 잃게 한다. 피가 흐리고 짜릿하고 심리묘사가 정교하다. 무엇보다 훌륭하게 북한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익명의 탐정소설이 어떻게 이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까.

WP의 국무부 출입 대기자며 한반도문제 전문기자인 그랜 케슬러도 이 책을 놓치지 않았다.

<익명의 처치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는 수십 년간 아시아를, 그중 10여 년을 한반도에서 헤맸다. 나는 내 정보보고서의 한계에 좌절했다. 나는 서구의 도덕관을 통해 정보보고서를 썼다. 그건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압제국가라는 도덕관이다. 그래서 나는 친숙한 북한을 스릴러라는 소설 형태를 통해 많은 독자에게 전하고 싶어 책을 썼다.”>

케슬러 대기자가 읽은 ‘고려호텔…’은 스릴과 탐정이 풀어나가는 스토리가 잘 짜여진 소설만이 아니었다. “이 소설에는 지도가 들어있지 않지만 산맥과 언덕 넘어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북한의 풍경이 얼마나 북한 인민에게 심리적 연계를 맺고 있는지가 잘 그려져 있다.”

<이 소설에는 북한의 군과 당이 중심이 된 국가안전보위부 수사단과 경찰 중심의 사회안전부 수사단 간의 암투, 살인, 테러 등이 잘 그려져 있다. 이 암투의 와중에 조사관 오는 적과 동지를 오가며 사태를 조사한다. “처치는 조사관 오의 활약을 통해 소련의 체제를 넘어 북한식으로 국가안보를 다루는 특이한 면을 잘 표현했다.”>

이 소설의 탐정이며 조사관인 오는 2003년 1월 프라하에서 익명의 아이리쉬인인 서방의 정보요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2002년 5월~8월 사이 ▲평양 남쪽의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고려호텔 18층에서 발견된 핀란드인 시체 ▲그가 겪은 강계, 만포진에서의 국가안전보위부 수사단과 사회안전부 수사단 간의 테러, 살인 ▲그리고 그가 추적한 살인의 배경에 대해서였다.

그때 이 보고를 녹음한 아이리쉬 정보요원은 조사관 오가 쏟아낸 말들을 요약해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훌륭한 탐정이지만 그 전에 당신은 시인이요. 그리고 낭만주의자구만.”

56세의 조사관 오는 북한에서, 평양에서 일어나는 조사관이 겪는 일상을 길게 늘어놓으며 결론지었다.

<사람들은 내가 얼빠져 있고 자주 잊어먹는다고 한다. 나는 내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게 있다.

“자주 잊으면 실수한다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실수해야만 승급한다. 실수를 하는 사람만이 당 중앙에서 신임받는다.”

“나는 낙관주의자여서인지 모르지만 일부분 성공할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기록하지 않는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다음 번에 그것이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점과 점을 잇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여태껏 똑바른 직선을 보지 못했다. 모든 것은 둥근원이 서로 엮여 도는 것이다. 그 원들은 돌며 피를 흘린다.”

“오늘의 동지가 한국의 자동차를 밀수해 만포진에서 중국에 팔고 그 이권으로 서로 싸우며, 또 하나의 둥근원인 국가안전보위부 수사단이 이 밀수를 독점하려는 원들과 싸우고. 폭력, 테러는 직선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서방에서는 직선을 투명한 것이다고 말하지만 북한에서 투명한 것은 없다. 있다면 저 멀리, 가까이 보이는 산들이다. 산들만이 변하지 않고 투명한 것이다.”

아이리쉬 정보원은 “과연 당신은, 시인이다. 비극적인 것은 당신은 시인 같은 마음을 지녔지만 나(서방)는 그 시를 듣는 귀가 없다는 것이다.”

제임스 처치의 소설에는 산과 강과 절에 관해 고려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문장가들의 글들이 짧게 인용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는 ‘김정일’, ‘북한의 핵’, ‘아사’, ‘독재’, ‘폭군’ 등의 말이 없다. ‘평양의 24시’안에서 고민하는 56세의 경찰 조사관의 일상이 있다.

대선주자들, 국가정보원, 통일연구원에서 제임스 처치를 초청해 ‘북한의 오늘’에 대한 시 같은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한다.



입력시간 : 2007/01/23 15:23




박용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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