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알아보고 아낌없이 정을 주는 동물로 흔히 개를 꼽는다. 실제로 여러 종류의 의구(義狗) 전설이 세계 여러 나라에 널리 퍼져 있다. 한국의 의구 전설로는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가 잘 알려져 있다. 풀밭에 잠든 주인을 불길에서 구하고자 목숨을 바친 일과 도둑에게 피살된 주인의 원수를 갚게 한 일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임동(林洞)과 해평면 낙산리의 의구총(義狗塚),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리(獒樹里)의 의견비(義犬碑)가 전자를 기린 예로 볼 수 있다.

주인을 향한 의리와 애정을 보인 동물은 개에 그치지 않는다. 소 역시 개 못지않은 굳은 신의를 지키며 절절한 사랑을 드러낸 예를 볼 수 있다. 주인과 함께 밭을 갈던 중, 습격한 호랑이로부터 주인을 구하고, 그 주인이 죽자 단식 끝에 따라 죽은 소도 있다. 경상북도 산동면 인덕리의 의우전(義牛傳), 의우비(義牛碑), 의우도(義牛圖)가 이 일을 기렸다.

14년 전에는 ‘의로운 소’가 있어 화제를 모았다. 경상북도 상주시의 ‘의로운 소’ 누렁이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임봉선 씨의 암소 누렁이가 갑자기 고삐를 끊고 자취를 감췄다.

이웃에 살며 자신을 사랑해주던 김보배 할머니가 사망한 후에 일어난 일이다. 주인 부부가 누렁이를 찾은 곳은 다름 아닌 김 할머니의 무덤이었다. 누렁이는 이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있었다. 주인이 달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누렁이는 주인의 손을 뿌리치고 김 할머니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 할머니 영정에 문상했다고 한다. 이 소가 19년의 삶을 마치고 지난 1월 11일 숨을 거뒀다. 누렁이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중장비를 동원하여 500kg이 넘는 누렁이를 옮겼다. 꽃상여도 마련했다.

사벌면 삼덕리 상주박물관 옆에 묻힌 이 누렁이의 무덤은 ‘의우총(義牛塚)’으로 지정됐다. 한편 누렁이 장례를 치러준 상주시는 앞으로 '의우총 건립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자신을 돌봐줬던 이의 묘소와 집을 찾아가 문상한 누렁이의 행적을 보은의 귀감으로 삼아 후대에 길이 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위에서 쓰인 ‘의구총’, ‘의우총’이란 말을 살펴보자. ‘의구총’은 말 그대로 ‘의로운 개의 무덤’이요, ‘의우총’은 ‘의로운 소의 무덤’이란 뜻으로 쓰였다. 그런데 ‘의구총’, ‘우의총’의 ‘총(塚)’은 여느 무덤과는 달리 높고 큰 분묘를 이른다. 또한 다른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특이한 유물이 발견됐다든지 다른 무덤과 차이 나는 점이 있을 때 붙이는 이름이다.

장신구류 8,766점, 무기류 1,234점, 마구류 504점, 그릇류 226점, 기타 796점으로 모두 1만1,526점의 유물이 출토된 경주의 천마총을 생각해 보자. 바닥 밑지름이 51.6m, 높이가 12.7m이다. 임진왜란 때 금산싸움에서 장렬히 전사한 의병장 조헌(趙憲), ·승장(僧將) 영규(靈圭) 등 칠백 명의 의사(義士)가 묻힌 충남 금산군 금성면의 칠백의총(七百義塚)도 자리 잡은 면적이 7만5,240 ㎡에 이른다. 이들이 ‘총’의 전형적인 예다.

차로 달리다가 자칫하면 그냥 스쳐지나갈 정도의 봉분이면 ‘총’이라 하기엔 거리가 멀다. 그리고 먼 훗날 이들 무덤에 얽힌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이가 ‘의구총’, ‘의우총’이라는 말을 듣거나 보았을 때 혹시 무기인 ‘총’의 일종으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의구총’ 대신 ‘의로운 개의 무덤/은혜 갚은 개의 무덤’으로, ‘의우총’ 대신 ‘의로운 소의 무덤/은혜 갚은 소의 무덤’으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