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입는 배냇저고리는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담았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입는 수의(壽衣)는 저승에서 편안히 지낼 것을 기원하는 가족의 마음을 담았다. 둘 다 한복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블라우스이면서도 참으로 환상적인 옷이라는 여자 저고리와 바람의 옷이라는 치마, 그리고 넉넉하게 몸을 감싸 주는 남자 저고리와 바지도 한복이다. 이 외에도 한복에는 둥근 깃이 달린 단령(團領)과 원삼(圓衫), 혼례 옷인 활옷, 궁중 소례복인 당의(唐衣)가 있다. 저고리 위에 덧입는 조끼와 배자, 조끼 위에 입는 마고자, 예를 갖추어 입는 두루마기와 도포도 있다.

머리 위에 쓰는 쓰개를 보자. 남자들이 포와 함께 착용하는 갓, 관리들이 단령과 함께 착용하는 사모(紗帽), 방한모(防寒帽)인 남바위, 남자용 복건과 호건, 여자들이 원삼과 함께 착용하는 족두리, 활옷이나 당의를 입을 때 쓰는 화관, 여성용 방한모인 조바위와 아얌, 어린이의 방한용·장식용인 굴레가 있다.

장신구를 보자. 여자들이 쪽진 머리 뒤에 꽂는 뒤꽂이, 관이나 가체, 쪽머리를 고정하는 비녀, 쪽머리 위를 꾸미는 첩지가 있다. 묶은 머리를 장식하는 댕기에는 도투리댕기, 제비부리댕기, 앞댕기, 고이댕기가 있다. 노리개도 다채롭다. 손가락에는 두 개 고리가 한 쌍으로 된 가락지나 한 개로 된 반지를 끼며, 버선을 신은 발에는 운혜나 태사혜를 신는다.

명절에는 명절 옷을 입는다. 어린이는 색동옷을 입는다. 무병무탈하길 바라는 부모의 기원이 담긴 옷이다. 부모가 별세하면 거친 옷감으로 거칠게 만든 옷을 입어 슬픈 감정을 표현한다. 기제사를 지낼 때에는 옥색 제복(祭服)을 입는다.

두 손을 맞잡는 경우 평상시에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남자는 왼손을 위로 한다. 부모상(父母喪)을 당하여 졸곡(卒哭)에 이르기까지의 흉시(凶時)에는 여자는 왼손을 위로, 남자는 오른손을 위로 한다. 정월 초하룻날 세배를 하면 인사받은 웃어른이 답례로 덕담을 한다. 세배한 측에서 먼저 인사말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한복 입을 때 주의할 점도 있다. 구두를 신지 않으며 가방을 어깨에 매지 않는다. 머리를 늘어뜨리지 않는다. 목걸이를 하지 않는다. 저고리 속에 목을 가리는 옷을 받쳐 입지 않는다. 예를 갖출 때나 실내에 있을 때에는 목도리를 하지 않는다. 남자의 경우 마고자나 바지 저고리 차림으로 외출하지 않는다.

2000년의 역사를 지닌 옷,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전통적인 한복이 그 선과 색깔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찾아내어 새로운 패션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파프레타포르테에서 저고리를 없앤 한복을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고 한복풍을 기조로 하되 일상에서 편하게 입도록 변형하여 보급하기도 한다. 이런 옷을 ‘개량한복’이라 부르는 이가 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개량’이 무엇인가.

나쁜 점을 보완하여 더 좋게 고침을 뜻한다. 농기구를 개량한다든지 품종을 개량한다든지 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옷의 형태를 개량한다는 표현은 마땅치 않다. 옷의 형태를 좋다 나쁘다로 판가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장미를 호박꽃이라고 부르면 장미 향기도 덜 난다고 한다. 그 나름대로 독특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 변형을 두고 ‘개량한다’는 말은 옷 맛을 떨어뜨린다. 이런 경우엔 ‘생활한복’이란 말이 좀 더 낫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