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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생각] '반증'을 어떡할 것인가


주객이 바뀌어 거꾸로 쓰이는 예로 ‘접수’, ‘자문’ 외에 ‘반증’이 있다. 이 반증이 반대 개념으로 얼마나 큰 세력으로 쓰이는지 2월 첫 주의 기사에서 몇몇 사례를 본다.

①민주당 이상열 대변인도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을 배신하고 중도개혁 세력을 분열시킨,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당"이라며 "이번 집단 탈당은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정당임을 반증한 것인 만큼 여당 내 중도개혁세력은 하루빨리 탈당해 민주당이

주도하는 중도개혁 세력 대통합에 참여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②한때 존 네그로폰테 국가정보국장이 국무부 부장관으로 옮길 당시에는 케네스 브릴 전 국가 확산 대책 센터 소장이 후임자로 유력했었다. 이에 대해 워싱턴의 한 고위 외교 소식통은 “브릴 대신 루드를 기용한 것은 라이스 장관이 백악관에서 함께 일했던 그를 각별히 신임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③이 전 시장은 (중략) "참여정부가 지난 4년간 군사작전처럼 세금을 늘리면서 막대한 예산을 썼는데 도대체 어디에 돈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며"낭비가 많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증하다(反證-)’란 어떤 사실이나 주장이 옳지 아니함을 그에 반대되는 근거를 들어 증명한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그것을 반증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 “저희에게도 이게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할 만한 문서가 있어요.”(김용성 <도둑 일기>)처럼 쓰인다. 그런데 ①~③에 쓰인 예는 이 뜻으로 도저히 해석할 수가 없다. ‘반증하다’ 대신 ‘입증하다’, ‘증명하다’로 고쳐야 의미가 통하게 된다.

④이 총장 사태는 표절 의혹 제기 과정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다. 교수 사이에서는 이 총장 반대 진영 교수들이 표절 여부를 미리 조사해 놓고 언론에 흘렸다는 설이 파다하다. (중략) 제보 교수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만큼 교수 사회가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반증이다.

⑤아우디는 지난해 7월 고급 SUV인 Q7을 출시하면서 한글로 작동되는 MMI시스템을 선보였다. MMI는 오디오, TV, CD 등 엔터테인먼트 장치는 물론이고 서스펜션 등 차량 시스템을 조작하는 장치다. 아우디코리아 관계자는 “독일 아우디 본사가 그만큼 한국 시장을 중시한다는 반증이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⑥영화 ‘공공의 적’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안티 모범생이기 때문이다. 법과 원칙에 충실해야 할 검사와 경찰이 적당히 ‘나쁜 인물’로 묘사되면서 오히려 그 용기와 솔직함이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법보다 주먹을 앞세우는 인물이 갈채를 받는 것은 그만큼 ‘공공의 적’이 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④~⑥ 역시 ‘반증’을 제 뜻을 살리지 못하였다. 이 자리에는 ‘증거’ 또는 ‘뜻’, ‘말’ 정도가 적당하다.

다음의 예를 보자.

⑦검찰 수뇌부가 전격적으로 감찰 조사를 결정한 데에는 이번 사건에 대한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밀실 수사’를 거론하며 “검찰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고 말한 데에 당시 정 총장은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유감을 표명하는 등 반발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극약 처방이었지만 당시 대법원장의 발언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넉 달 후에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⑦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뜻이 통한다. ‘반증하다’ 오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입증하다’로 단어 선택을 잘한 것이다. 때로는 엄청난 혼란 속으로 몰고 갈 소지가 있는 ‘반증-입증’ 관계를 조심스럽게 살펴야 할 것이다.



입력시간 : 2007/02/28 17:32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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