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월 17일 국정브리핑에 올린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 기고문 첫줄.

“저는 요즈음 소설을 읽거나 TV 드라마를 보면서, 아내에게 ‘작가는 참 좋겠다’ 이런 푸념을 곧잘 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의 비판이나 논쟁을 보면서도 역시 ‘학자들도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작가는 참 좋겠다”는 말은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에게는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지난호(2161호) 주간한국에 소개된 황석영의 글 “‘개똥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가 노 대통령의 기고문처럼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황석영의 ‘총대론’ 주장은 정치권, 학계, 문단에 파장을 던졌다.

그는 이번 대선에 ‘나라도 총대를 메겠다’고 나선 이유를 썼다. “내가 광대처럼 또 이제 나서서 ‘사람이 살고 있었네’(1989년에 쓴 북한 방문기의 제목)식으로 분위기 일신의 바람을 잡는 것은 이를테면 작가로서의 본능이다. 왜냐하면 나는 어느 자리에서나 좌중의 분위기가 침체되면 그게 ‘내 탓이거니’ 여기는 못난 자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총대’의 본뜻이다. 나의 총대는 그러므로 ‘이제 나서서 다 같이 처음부터 생각했던(87년 6월 이전). 민주화운동 하자’는 소리다. 판은 모두 끝났다. 그러므로 현재의 구도는 깨져야 한다. 그것은 밖에서부터 스스로 잘못 기획하고 구축한 체제를 깨는 일이다. 운동성의 회복이야말로 이제는 오래전 어느 6월에 탄생했던 ‘시민’들의 몫이다.”

그는 어떤 ‘총대’를 메려하는가. 그는 5년간의 (93년 4월~98년)의 방북사건 구속 이후 2004년부터 시작한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의 ‘코리아’ 넘겨보기 여정의 결론을 얻었다. “안과 밖을 향한 운동의 전략을 까발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큰 선은 보수나 진보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 세력을 줄이고 통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중도라는 깃발을 들어보는 것이다. 마치 독일 녹색당의 깃발처럼, 그것은 진보의 적색도 보수의 청색도 아닌 그들이 혼합된 보라색이다. 중도는 그러므로 기회주의가 아니다. 현재의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공의 핵심을 뚫는 것이 중도다.

그 프레임 안에 누가 들어오든 살아서 온다면 그에게 깃발을 쥐어 주리라. 그리하여 지금의 카오스를 통합하고 북과의 소통을 살려내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점쟁이가 아니더라고 그에게 최고의 책임이 주어질 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이런 ‘점쟁이를 넘는 확신’을, ‘총대론’을 각계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총대’를 황석영이 지지하는 손학규 후보라고 생각하는 손 전 경기지사의 공보특보 이수원 씨는 “국민이 아우르는 통합의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건데 손 전 지사가 여기에 맞는 사람이다”고 해석했다.

이부영 전 의원(화해상생마당 대표)은 “진보, 보수 편가르지 말고 새 시대에 대비하자는 게 그의 뜻이다. 올 중반쯤 대안이 보이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

이부영 전 의원과 함께 ‘창조한국 미래구상’에 참여 중인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국민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국민후보를 만들자는 면에서는 ‘미래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풀었다.

안병진 창원대 교수는 “보수, 진보 정계개편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주역은 과거 민주화 세력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창조자들이다”고 보았다.(경향신문 2월 14일자 보도)

광주전남 민족문학작가회의 부회장인 이승철 시인(1958년생, 시집 <당산철교 위에서>를 2005년 펴냄)은 2월 5일자 오마이뉴스에 ‘작가 황석영은 진실의 광장으로 나와라’는 기고문을 썼다. 그는 “진흙탕에 비유되는 현실 정치판에 작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실효성도 없거니와 다분히 작가적 오명을 각오해야 할 일이기에 오랜 세월 금기 사항이었다”며 손학규 전 지사와 황석영의 관계를 들며 비판했다.

그가 1월 하순 귀국했던 황석영을 인사동 술집에서 만나 들은 이야기를 썼다. 황석영은 그때 말했다.

“최근에 손학규도 만났고, 지난 70~80년대 나와 인연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 그리고 최근에는 조중동 3개 언론사 사주들도 만났어. 아름다운재단의 박원순도 만나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살지 마라’고 충고했지. 박원순에게 내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대선 후보로 네 이름이 살짝 거론되면 이름 좀 팔라고 했어.

그랬더니 그러마 하고 수긍하더라. 현재의 정치구도가 깨어져야 해. 예컨대 손학규를 범여권 후보로 끌어오면 우리에게 승산 있는 게임이 될거야.”

이쯤 이야기가 진전되면 황석영의 중도 ‘보랏빛 깃발’이 2007년 대선에서 방방곡곡에 휘날릴지 궁금해진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작가는 참 좋겠다”는 헛된 칭찬의 말인지 모른다.

황석영은 그동안 베를린, 평양, 미국, 런던, 파리에서 본 코리아 ‘민족’에 대해서도 총대를 메려한다.

“‘우리 민족끼리’가 중요하면 그건 식구들의 공간인 저 안쪽에, 안방 쪽이라 할 ‘6.15 민족문화협의회’에서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민족’의 헛것에서 놓여날 때에 통일을 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얻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미 유럽이나 아메리카와 대등한 ‘아시아 공동체’를 꿈꾼다. 이제 젊은 후배들은 ‘제3세계’ 연대로 80년대의 한계와 범위를 시원스럽게 넘어가고 있다.”

중도의 깃발을 든 황석영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