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칸서 테러로 사망

미국에서 중고교와 대학을 졸업한 그는 편안한 삶을 잠시 접어 두고 2005년 6월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훈련소에 입소한 그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모두가 꺼려하는 특전사령부 최정예병 근무를 자원했다.

그리고 만기 제대를 9개월 앞둔 지난해 9월, 그는 또 한번 큰 결심을 했다. 언제 어디서 테러가 발생할지,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공포의 땅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자원했다. 현지 미군기지에 파견된 한국의 건설공병지원단인 다산부대 통역병으로 근무하기 위해서였다.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온갖 불법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요즘 세태에, 그는 오직 ‘조국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온몸을 던졌다.

그러다 2월 27일 오후 2시 30분쯤(한국시간), 그는 귀국 예정일(4월 3일)을 한 달여 남겨 두고 머나먼 이국 땅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누웠다. 청춘의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아프간의 바그람기지 정문 앞에서 기술교육을 받으려는 현지인들을 기지 내로 안내하기 위해 기다리던 그가 반정부 무장단체인 탈레반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자살폭탄 테러로 끝내 숨진 것이다.

살아서 조국을 너무도 사랑했던 그는 27세의 고(故) 윤장호 하사(사고 당시엔 병장이었으나 정부에서 1계급 진급시키고 인헌무공훈장 추서). 이제는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는 슬픈 이름이다.

그는 베트남전쟁 이후 해외에 파병된 한국 군인으로 단순 사고가 아닌 교전이나 테러로 사망한 첫 희생자가 되었다. 더구나 이번 테러가 하루 전날 바그람기지에 잠시 머문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알려져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우리의 전쟁이 아닌 저들의 전쟁에 한국의 젊은이가 애꿎게 희생당한 것이다.

정약용의 호를 딴 다산(茶山)부대는 아프간에서 인도적 차원의 구호, 진료활동, 평화재건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에 동참해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2003년 2월 파병되었다.

그리고 주어진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올 연말에는 모두 철수할 예정이었다. 윤 하사가 다산부대에 자원한 것은 조국에 대한 사랑 이외에도 세계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소박한 꿈도 담겨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그는 아프간으로 떠날 때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빈 라덴을 잡으러 간다”는 글까지 올려 놓았다.

그런 윤 하사가 테러로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온국민도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한마음으로 애도하고 있다. 사이버분향소에는 추모의 물결이 넘쳤다. “하늘나라에 가서 못다 이룬 꿈 이루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젊은이의 모범을 보인 당신은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달했던 윤 하사는 2남1녀의 막내로 가족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부친 윤희석(64) 씨는 “장호가 자원할 때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오히려 그곳이 안전하다며 나를 설득했다”며 “설 연휴 때 안부전화를 해와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게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이야…”라며 눈물을 흘렸다. 윤 하사는 부모를 안심시키려는 효심도 지극했던 것이다

윤 하사의 시신은 1일 유족에게 인계돼 5일께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짧은 생애 동안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조국 사랑이 무엇인지, 세계 평화를 위해 테러 근절과 반전(反戰)이 왜 필요한지, 가치있는 삶은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그는 전쟁이 없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고 윤장호 하사의 영전에 명복을 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