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이 언론에서 쓰는 용어를 대상으로 하여 ‘차별적, 비객관적 언어 표현 개선을 위한 기초 연구’를 발간했다. 이는 ‘언어의 공공성 향상’이라는 사업을 수행한 결과로, 특정 사회 집단이나 개인을 차별하는 표현과 사건·사실의 전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객관적인 표현을 조사하고 분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소수자나 약자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대우해 왔는지 한번쯤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성(性)과 사회적 위치를 차별하는 예를 들어 본다.(용례 뒤의 괄호는 보도된 날임)

①졸업식장을 찾은 학생과 학부형들이 홍 씨를 알아보기도 했다.(2. 22.)

②필립모리스USA가 흡연으로 숨진 사망자의 미망인에게 손해배상금 이외에…. (2. 22.)

③올해 이천시 사회인 야구대회 이천리그 2부에 처녀 출전하는 ‘토야프렌즈 야구단’…. (2. 8.)

미혼모 존재, 이혼, 재혼, 배우자 사망, 입양 등으로 한 가정에 여러 성이 존재하는 시대….(2. 22.)

①~④는 성 차별적인 표현이다.

학생의 보호자를 ‘아버지나 형’으로 제한하고 어머니나 누이를 배제한 ‘학부형’, 남편이 죽었는데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뜻인 ‘미망인’, 여성의 성과 신체 부위를 암시하는 ‘처녀 출전’이란 말에서 단단히 버티고 있는 남성 중심적인 생각을 읽게 된다. ①은 ‘학부모’, ②는 ‘아내’·‘부인’, ③은 ‘처음 출전하는’·‘첫 출전을 하는’으로 바꾸면 중립성이 가미돼 한결 나아진다.

④의 ‘미혼모(未婚母)’는 자녀 양육에 따르는 책임과 고통을 여성에게만 돌린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미혼모’라는 말에 대응하는 ‘미혼부(未婚父)’라는 말이 다수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은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혼모는 해마다 늘어 현재 5,000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낳은 자녀의 친아버지는 대부분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부인하거나 나 몰라라 하니 이런 무책임한 아버지들을 찾아내 양육비를 받아내기까지 드는 비용과 법적 절차를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있다.

미혼모 자녀의 아버지는 기혼 남자가 아니면 미혼 남자다. 이 미혼 남자가 미혼부인 셈이다. 결국 일부 사전에서 ‘미혼부’를 “결혼하지 않은 몸으로 자녀가 있는 남자. ‘미혼모(未婚母)’에 상대하여 만들어 낸 말”이라는 뜻으로 올리기도 했다.

그야말로 필요에 의해 상대 성(性)에 비해 한참이나 뒤늦게 만든 말이다. 그 밖에 필요한 정보가 아닌데도 여성임을 드러내는 ‘여대생’, ‘여의사’라는 말도 재고해야 한다. .

①지하철 잡상인들이 어느 역에서 내릴지 모르듯이….(2. 12.)

②맞벌이와 결손가정이 늘어나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2. 22.)

③임신 23주 이전에 태어난 미숙아는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의료계의 통념이….(2. 21.)

④공식적인 학교 교육은 중학교가 끝인 그에게 ‘노가다’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2. 20.)

파출부를 나가며 3남매를 키우던 이 아주머니를 다시 볼 수 있을까.(2. 19.)

⑥청년 백수 수효는 신기록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2. 21.)

신용불량자가 된 김 씨는….(2. 23.)

①~⑦은 사회적 위치와 관련하여 일정한 틀이나 전형을 만들어 놓고 이를 기준으로 무엇인가 미흡하거나 빠져 있으면 우선 낮춰 놓고 보자는 심리가 깔려 있다.

즉, 일정 수준의 공간과 자본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잡상인’, 반드시 양친이 있어야 제대로 된 가정이라는 식의 ‘결손가정’, 예정보다 일찍 태어난 아기는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하는 ‘미숙아’, 아예 대놓고 낮춰 버리는 ‘파출부’·‘백수’·‘신용불량자’ 등도 고쳐야 할 표현이다.

①은 ‘상인’, ②는 ‘한부모가정(한 부모조차 없을 때에는 달리 불러야 할 듯)’, ③은 ‘이른둥이’, ④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 ⑤는 ‘가사도우미’, ⑥은 ‘취업 준비자’·‘구직자’, ⑦은 ‘금융채무 연체자’·‘금융채무 불이행자’로 고치면 좀 더 중립성과 객관성을 띤 표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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