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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 자크 시라크 대통령, 떠나는 '프랑스의 자존심'
45년 공직생활 마감 정계 은퇴 선언



“이제 국민 여러분이 부여한 임기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임기를 시작할지 여부를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유럽의 강국 프랑스를 이끌어온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마침내 45년간의 기나긴 공직생활을 마감하며 현재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5월 17일 정치의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한다.

시라크 대통령은 3월 11일 TV연설에서 4월에 실시되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사실상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 온갖 난관이 닥쳐도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바꿔가면서까지 능란하게 항해하던 시라크에게는 항상 ‘카멜레온 보나파르트’, ‘매력적인 거짓말쟁이’, ‘변덕이 심한 바람개비’ 등의 별명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74세의 노회한 선장도 낮은 지지도, 나이, 건강악화라는 높은 3각 파도를 끝내 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시라크는 프랑스의 현대 정치사를 이끌며 많은 영욕을 맛봤다. 금융계 간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62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참모로 정계에 정식 입문했다. 이후 68년 36세 때 경제부 장관, 74년 42세 때 총리(74~76년) 등을 거쳐 파리시장직을 장수(77년~95년)하기도 했다.

시라크는 81년과 86년 대권에 도전했으나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에게 연거푸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3수 끝에 시라크는 95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2년엔 극우파인 장 마리 르펜이 출마함에 따라 그를 견제하려는 민심에 힘입어 운좋게 재선에 성공했다.

12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한 시라크의 업적은 한마디로 ‘성공한 외치, 실패한 내치’로 요약할 수 있다.

시라크는 외교분야에서 ‘강한 프랑스’, ‘프랑스의 자존심’을 내걸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에 과감하게 맞섰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선봉에 서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파병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하기도 했다. 시라크는 90년대엔 유고슬라비아 내전 종식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95년에는 세계 각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는 또 드골주의의 계승자답게 영어 사용을 거부하고 프랑스어만을 고집한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내치는 별다른 뚜렷한 업적을 쌓지 못했다. 2005년 유럽헌법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돼 정치력이 타격을 입었고 설상가상으로 그해 파리 근교 슬럼가에서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해 지지율이 급락했다.

이와 함께 10%가 넘는 높은 실업률, 경기 침체, 막대한 국가부채를 다음 정부에 넘겨주게 됐다. 또한 파리 시장 재임 때 공금을 유용했다는 부패 스캔들까지 언론에 터져 나와 그의 말년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과 외신들의 시라크의 치적 평가에 대해 인색하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시라크 재임 기간에 프랑스는 시간을 낭비했다”고 비판한다.

어쨌든 이제 프랑스는 5월부터는 시라크의 ‘늙은 시대’가 가고 50대의 새로운 지도자가 이끄는 ‘젊은 시대’가 온다. 4월 대선에 출마하는 대다수 후보들의 나이가 50대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어느 분야든 높은 자리에 오르기보다는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든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시라크는 TV연설에서 “이제 다른 방식으로 여러분들께 봉사할 때가 왔다”고 담담하게 여생의 소망을 밝혔다.

‘실패한 내치’ 평가 때문에 마찬가지로 지지율이 급락한 노무현 대통령도 내년 2월이면 새로운 지도자에게 권력의 바톤을 넘겨줘야 한다. 노 대통령이 밝힐 퇴장의 변이 무엇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가겠다는 노 대통령도 ‘다른 방식의 봉사’를 꿈꾸고 있을까.



입력시간 : 2007/03/19 15:57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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