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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하워드 헌트의 '아메리칸 스파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듣고 보았을 것이다.

이라크와의 전쟁 발발 4주년인 3월 20일을 전후해 17일부터 워싱턴의 링컨센터 등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반전 데모에서 나온 연설들을. ‘반전 어머니’라 불리는 신디 시핸(아들을 이라크 전쟁에서 잃고 2005년부터 부시의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 앞에서 시위)은 17일 워싱턴에서 연설했다.

“우리는 전쟁기계의 그늘 밑에 있다. 부시 정부는 죽음과 파멸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 우리가 그걸 저지해야 한다.”

터프스대학 리차드 아이켄버그 교수는 이런 반전 열기를 보며 미국의 ‘일방정책’이 국민에게 안긴 실망과 분노를 요약했다. “미국의 국제적 입지는 지금 최하점에 와 있다. (…) 부시 대통령 이후 다음 행정부가 그것을 역전시킬 수 있을지도 현재로선 확실치 않다.”

이런 현실에서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 23일 88세에 급성폐렴으로 죽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실무책임자 하워드 헌트의 유저(遺著)인 <아메리칸 스파이-나의 CIA, 워터게이트 등에서의 비밀작전 역사>(2월 26일 나옴)도 읽어봤을까?

부시가 만약 이 책을 읽었다면 그는 놀랐을 것이다. 과연 CIA 요원 출신인 헌트가 직접 썼을까? 미국인, 특히 정치인과 저널리스트들은 그동안 헌트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느꼈을 것이다.

42년, 미국 아이브리그대학의 하나인 브라운대학 영문학과를 나온 헌트는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된다. 태평양 전쟁에서 부상한 그는 <동방과의 이별>이란 소설을 써 “젊은 헤밍웨이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해군을 제대한 후 육군 항공대에 재지원해 해외정보전락처(OSS)의 중국 정보 분석관을 지냈다.

이때 그는 광복군의 OSS 미국 파견대로 한국에 상륙하려던 이범석 장군(초대 국무총리)을 만나기도 했다.

46년 파리에 마샬플랜을 실시하는 ECA의 대변인, 49년 CIA 정식 요원이 되기까지 3편의 소설을 썼다. 그 후 70년 백악관에서 대학동창인 백악관의 법률고문 찰스 콜슨 밑에서 비밀작전을 벌이는 자문관이 되기까지 그는 80편의 스파이·탐정 소설을 썼다. 그 때문에 서평가들은 그를 ‘작가 요원’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애국심이면 불법도 적법이다”, “공산주의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실천한 ‘CIA 비밀작전’의 주역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72년 말부터 33개월을 여러 감옥에서 보낸 그는 CIA가 벌이는 ‘더러운 작전’인 음모와 전복의 명수로, ‘케네디 암살’(63년 1월)의 또 다른 공범으로 지목되는 등 ‘나쁜 일’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헌트는 ‘아메리칸 스파이’에서 죽음을 예감한 듯 부시 대통령 등 이라크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애정 어린 충고적 유언을 남겼다.

그는 감동깊게 들은 말이 있다고 책에서 썼다. 닉슨이 백악관을 나온 후 워터게이트의 주범들(도청 침입 등을 한 ‘배관공’들은 이들을 ‘교장선생님’들이라 불렀다) 중 한 명인 닉슨의 법률고문 존 에리히만(77년 20개월 복역 후 석방. 99년 2월 사망)이 선고 공판에서 말한 최후진술이다.

“나는 여지껏 명령 받은 대로 하는 것이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과장 속에 살았다. 그러나 앞으로 백악관을 차지할 이들과 그의 보좌관들은 새로운 형이상학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은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해야 하는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나는 공판 과정에 계속 거짓말을 했고 남에게 혐의를 넘겼다. 나 자신의 의지와 판단이 없는 이런 행위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내 도덕적인 판단을 빼앗긴 것이다. 내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아버지나 마누라나 누구에게도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미루지 마라. 가족에게 미룰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일들이다. 도덕적 판단은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헌트는 이런 ‘서로에게 떠넘기기’ 풍조가 오늘의 미국을 이라크 사태 수렁 속으로 밀어넣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 뿌리는 케네디가 쿠바를 침공해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피그만 작전’을 명목상으로만 진행해 침공작전을 실패하게 만든 데 있다. 그 후 베트남 전쟁 수렁에 빠지고, 뒤이어 닉슨의 워터게이트, 레이건의 이란-콘드라 게이트, 오늘의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닉슨은 권력의 남용과 적용을 혼돈케 했다. 대통령제와 미국의 헌법을 남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워터게이트 도청이다.”

“개인의 사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도청이다. 닉슨은 영장 없는 도청을 실시해, 결국 워터게이트 침입사건으로 하야했다.”

“조지 W 부시는 이런 닉슨의 우를 다시 범하고 있다. 미국 내 스파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영장 없이 도청할 수 있다는 새 조치의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헌트는 숨지는 날까지 이를 걱정하고 우려했다. 부시 대통령은 꼭 <아메리칸 스파이>를 읽어봐야 한다.



입력시간 : 2007/03/27 15:02




박용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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