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부터 4월 2일 하오 4시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최종 타결되기까지 서울에선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됐다. 이런 와중에 두 가지 일이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잊혀졌다.

‘잠 못 이루는 밤’ 속에 묻혀버린 첫 번째 것은 3월 31일과 4월 1일 제주에서 열린 아소 다로 일본 외상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노타이 만남’.

‘어제와 오늘’(주간한국 2006년 10월 2일자 ‘아소 다로와 만화왕국’) 칼럼에서 필자는 지난해 9월 20일에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아소 다로 외상의 광적인 만화 읽기 취미에 대해 썼다. 2005년에 <고이즈미와 일본, 광기와 망령의 질주>를 펴낸 후지와라 하지메(1938년생. 프랑스 그루노블대 지질학박사. LA거주 프리랜서) 박사가 만화 읽는 일본 외상의 모습을 평한 글도 함께 실었다.

“만화는 그림을 좀 더 단순화한 것으로 만화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쓰지만, 만화를 읽는 쪽은 머리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만화 읽기로는 사고력을 키울 수 없다. (…) 그가 이 정도로 빠져 지낸다면 언제 제대로 독서를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인간의 품성은 애독하는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신체를 운동으로 단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는 정신을 단련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서를 가까이 하지 않으면, 신체에 혼이 없는 것과 같다.”

아소 외상은 지금도 한 주에 날짜를 정해 ‘매거진’, ‘점프’ 만화잡지 등 10~20권의 만화책을 읽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 회담을 한 아소 외상이 비행기 안에서 무슨 만화를 읽었는지에 대한 보도는 없었다. 오마이뉴스는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어정쩡한 노타이 만남’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한미 FTA에 묻힌 두 번째 것은 지난 3월 26일 서울 남산 기슭의 ‘문화의 집’에서 열린 손종섭(1918년생) 옹의 한시 번역집 <손끝에 남은 향기> 출판기념 모임이다.

중앙일보의 매주 월요일자에 ‘뒤적뒤적’ 서평 칼럼을 쓰는 김성희 기자(한국일보 견습기자 40기. 83년 4월 입사)는 이날 모임에 대해 썼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아니 하늘 아래 처음일 듯 싶은 ‘은빛 출판회’였다.”

손 옹에게서 고문(古文)과 한자를 배운 경북여고 24~31회 졸업생들, 팔순의 18회 졸업생들, 당시 동료 교사 등 머리가 희끗희끗한 70여 명이 참석한 은빛 모임이었다. 한 참석자가 “선생님이 고문을 가르쳤기 때문에 별명이 ‘고물장수’였다”고 하자 다른 이가 말했다. “선생님은 ‘결론적으로’라고 할 것을 ‘뭉뚱그려 말하면’ 했을 정도로 우리말 사랑도 대단하셨다”고 옛 추억을 회상했다.

손 옹은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한 후 경북고, 경북여고 등에서 국어교사로 교편을 잡았다가 72년 건강이 좋지 않아 퇴직했다. 5세 때부터 한학자이던 아버지 손병하 옹으로부터 한문학을 배웠다. 손 옹은 92년 한시 풀이집 ‘옛 시정을 더듬어’를 시작으로 한시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 힘썼다.

이번에 나온 <손끝에…>는 그가 일곱 번째로 쓴 책. 이날 모임에서 손 옹은 “옛말에 ‘도가 있는 곳에 스승이 있다’고 했다”면서 자작시를 낭송, 은빛 출판 모임에 참석한 제자들에게 화답했다.

“쪽보다 더 짙푸른, 이젠 외려 내 스승들/ 옛 스승 정을 일깨워 다시 만나니 꿈같기만.”

손 옹은 <손끝에…>에서 231명이 쓴 우리나라 한시 280수를 풀어냈다. “시는 옮겨도 시가 되어야지 산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이 가득하다. “고서 속의 한자들은 우리말 실어증(失語症)에 빠져 있다.

본디 정감 어린 고운 말이었건만 그대로 적을 그릇이 없던 당시라서, 부득이 한자를 빌려 부호삼아 썼던 것인데, 오늘날은 그를 해독하는 비밀열쇠를 잃어버린 처지라, 알짬 같은 우리 문화이건만, 부호 해독의 길이 막혀 후손들과도 소통이 아니 되니, 이런 비극이 어디 또 있다 하리오?”

열정은 아직도 식지 않은 채 손 옹은 이제 90세를 맞고 있다. 그 열정의 중심에는 우리의 봉건사상, 성리학 등에 흐르는 사대와 신분세습의 낡은 틀을 깨고 싶은 인권사상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름 없는 서민 시인들의 시와 함께 책 속에 녹아 있다.

손 옹은 한시가 표현하는 은유와 비유를 우리의 가락과 말로 본래의 뜻을 복원하며 인권사상을 찾아냈다. 그것은 사람의 행동이나 이데올로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 짐승, 꽃, 바람, 산, 들, 강을 바라보는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이었다.

손 옹은 한 가지 예로 숙종·영조 때 활동하던 정내교(1681-1757)의 한시 노우(老牛)를 ‘고삐 매여 울고 있는 소’로 변역해 풀이했다.

“힘을 다하야 비탈 밭 갈고 나선,/ 나무에 고삐 매여 외로이 울고 있네./ 어쩌면 개갈(介葛, 소의 말에 능했다는, 전설시대 개국(介國)의 임금)을 만나 이 억울함 호소할꼬?”

손 옹은 이 시를 풀이했다. “한평생 낮은 신분 탓으로, 소처럼 부림을 당하고, 늙어서도 그 멍에를 못 벗어나는 모순된 사회제도를 고발한 작품이다.” 이런 풀이를 한 이가 89세 한학자라고 말한다면 누가 믿을까.

노무현 대통령과 2007년 대선 주자들은 손종섭의 <손 끝에 남은 향기>를 손에 쥐고 전국을 다녀봐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