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는 온종일 가슴을 졸였다.

탕, 탕…그리고 무수한 탕, 탕, 탕….

16일 오전 7시 15분(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 기숙사, 그리고 2시간 뒤 노리스홀 강의실에서 32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미국 역사상 최악의 교내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국적 때문이었다. 미국 언론에서는 즉각 용의자가 아시아계 학생이라고 말했다.

순간 우리는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미국에 유학간 학생들 중엔 한국인이 가장 많다기에 더욱 그랬다. 마음 속으로 빌었다. ‘제발 그가 한국인은 아니기를…’.

사건 다음날 오전 미국 경찰은 발표했다. “용의자는 한국인 조승희이다.”

같은 대학 영문학과 4학년생인 조 씨는 23세 한국계 이민 1.5세대였다.

“아니, 동방 예의지국이 어쩌다가….” 미국 전역이 깊은 슬픔에 빠졌다면 한국은 큰 충격에 빠졌다. 할 말을 잊었다. 넋을 잃었다. 한마디로 망연자실이었다. 교민 사회도, 유학생들도 혹시 있을지 모를 후폭풍을 걱정했다.

평소 총기 보유와는 거리가 멀 것 같았던 한국인이 어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단순히 조 씨 개인의 이상한 성격 탓으로만 돌려야 할까. 우리의 자녀교육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신자유주의 교육 영향으로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에게 공부 잘하는 우등생, 특목고와 명문대 진학만 강조할 뿐 남을 따뜻하게 배려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인성교육은 등한시해왔다.

그 결과 비정한 경쟁지상주의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학생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종종 국내외에서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끔찍한 사건을 일으켰다. 어쩌면 이번 사건이 한·미 관계 악영양 및 한국 이미지 실추 걱정 못지않게 우리 사회에 던진 숙제일는지 모르겠다.

아울러 우리는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해 숨진 미선· 효순 양 사건 때 촛불을 밝혀 두 중학생을 추모했듯이 이번엔 조 씨의 총기 난사로 억울하게 죽어간 버지니아 공대의 영령들을 위해 마음 속에 추모의 촛불을 켜야 한다. 인터넷에도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말을 전해야 한다. 한국인으로 인해 슬픔에 잠긴 미국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동참하는 것도 인성교육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32인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