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국민과 열린 대화를 극히 소중히 했던 민주적 지도자였다. 그는 이 같은 대화를 통해 국가의 어려움을 국민에게 알리고, 나아가 정책에 대한 건전한 여론을 수렴했다.
그 같은 과정 자체를 사회통합과 정치적 민주화의 근간으로 소중히 했던 사람이다. 그는 오늘의 러시아를 있게 한 초석을 놓은 지도자다."
장례식에는 옐친 대통령 집권 9년 기간에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영국의 메이저 전 총리, 그리고 러시아의 차기 대통령 유력 후보인 세르게이 이바노브와 드비트리 메드베제프 두 부총리가 참석했다.
그런데 묻힌 곳이 안톤 체호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등 문인들이 잠든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묘역인데도 1970년 <수용소 군도>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년생. 1974~1994년 미국 버몬트주에 망명)은 조사는커녕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솔제니친은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단 문학상 수여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노쇠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지난 4월 27일 별세한 첼리스트 로스트르포비치(80)에게는 "그의 죽음은 러시아 문화에 큰 상처를 남겼다"는 조사를 보냈다.
그는 부인을 4월 30일 장례식에 대리 참석토록 했다. 내년에 90세를 맞는 솔제니친은 옐친의 죽음에 대해선 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을까.
솔제니친은 버몬트에서 러시아로의 귀국을 서두르던 94년 2월께 뉴요커지(誌) 대기자 데이비드 렘니크(1958년생. 80-92년 워싱턴 포스트 모스크바 특파원 역임. 93년 소비에트의 붕괴를 다룬 '레닌의 무덤'으로 94년 퓰리처상 수상)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때 솔제니친은 옐친에 대해 말했다.
"나와 아내는 91년 8월 버몬트에서 옐친이 탱크에 올라 쿠테타 집단을 성토할 때 기뻐 고함쳤다. '과연 시민의 대통령'이다고" "나는 옐친을 지원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고르바초프는 모든 발표가 진솔하지 않았으나 옐친은 그 반대다. 옐친은 진실로 공산당과 단절했다. 나는 90년 공산당 회의에서 그가 모든 공산당 중앙위원이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당을 떠나는 것을 TV로 보았다. 그리고 1991년 탱크 위 연설도 보았다."
" 91년 8월 이후에 그는 소비에트 의회 폐지, 지방 소비에트 해체, 공산당 폐쇄 등의 조치로 인민의 열광을 받았다. 그러나 1993년 10월의 모스크바에서의 대량학살(공산당 보수파의 의회농성에 대한 유혈진압)은 큰 실수다.
그의 손은 91년의 깨끗한 손이 아니었다. 그는 각 자치공화국에 살고 있는 2,500만 명의 러시아 인민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국경선을 정하고 국가연합을 만들려고 했다."
"나는 귀국해서 옐친에게 물어 보았다. '충격요법'(시장경제체제를 갖추기 위해 가격 자유화, 외환 규제철폐, 개인자산 자유 보장 등 급진 정책)을 어머니(조국)에게도 쓸 거요?"
옐친은 말을 돌렸다. "러시아를 '우리'라고 합시다. 나는 충격요법을 나에게 먼저 사용하고 아직 성숙하지 않은 우리(러시아)에게는 쓰지 않겠소. 그리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솔제니친이 귀국하기 직전 페테스브루크의 한 신문이 20년 만에 귀국한 그가 이후 무엇을 할 것 같냐는 여론조사를 했다. "러시아 대통령을 해야 한다"가 48%, "옐친이 계속해야 한다"가 18%였다.
렘니크 기자가 "그래, 러시아에서 무엇을 할 겁니까"라고 묻자 그는 답했다.
"나는 '거짓말을 하면서 살지 말라'는 신조로 살았소. 거짓말하는 지식인은 무관심한 사람이며 사기꾼이요. 내 역할은 도덕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소.
사람들은 '솔제니친이 누구야?' 하며 '우리가 발길질해 내쫓은 사람 아니야', '그는 오래 전에 좀 일을(금서가 된 <암병동>, <이반데니쇼비치의 하루> 등 소설 집필)했지'라고 말해요. 그러나 현재도 이런 책들은 출판되지 않았어요. 이게 도덕을 일깨우는 것을 어렵게 해요."
그는 포병 대위로 1945년 독일의 포로가 되었다가 귀국해 11년간 시베리아 '수용소 군도'에서 생활했다. 노벨상 수상 후엔 20년간의 망명 생활 속에 러시아 제1급 최고훈장을 받았다. "솔제니친의 삶은 러시아 시민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결실이다"가 훈장을 수여한 이유였다.
옐친은 임기 중인 99년 1월 대통령 직을 푸틴에게 넘긴 후 2000년에 쓴 '한밤중의 일기'에서 삶에 대해 썼다. "한 인간은 밝은 큰 불덩이처럼 살아야 한다. 빛을 쏟아 낼 수 있을 만큼 활활 타며 살아야 한다. 결국 그는 불꽃처럼 결국에 사라지지만 깜박깜박 사라지는 것보다 더 큰 불빛을 남긴다."
솔제니친은 옐친과 다른 인생관 때문에 조사를 하지 않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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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