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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생각] 몸을 떨쳐 버리고


누구라도 죽음을 앞두게 되면 그 나름의 유언을 한다. 삶을 마감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숨을 마지막으로 몰아쉬는 순간에 남기는 말보다 더 진실하고 절박한 것이 또 있을까.

유언 내용은 또 얼마나 다양할 것인가. 그중에서도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이런저런 가족 걱정으로 유언 내용을 채우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또 소달구지를 크게 만들어 몰고 다니면서 거기에서 취사하고 라디오를 틀어 놓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글을 쓰고 싶다던 채만식이나 숨이 끊길 때까지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의 관현악을 듣고 싶다던 홍난파처럼 직업을 향한 애착을 고스란히 안고 가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나는 가오. 부디 일 많이 하시오”라고 한 방정환처럼 이웃에게 책임을 느끼게 하는 이도 있다.

당사자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해 유언하는 이도 있다. 몇몇 예를 본다.

한국에 와서 한센병(나병) 환자를 돌본 슈니 요셉 신부는 자신의 묘 위에 나무를 두 그루 심어 키워서 갈 곳 없는 한센병 환자의 집을 짓는 데에 써 달라고 했다.

오산학교를 설립한 이승훈은 자신의 뼈를 생물 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만지며 공부하게 하라고 했고, 한글 타자기를 발명한 공병우와 이일학교를 운영한 서서평은 자기의 몸을 해부하여 연구 자료로 삼으라고 했다. 조선조의 시인 황진이는 주검을 동문 밖 모래터에 그냥 내쳐 두어 벌레들이 그 살을 뜯어먹게 함으로써 천하 여인들의 경계로 삼으라고 했다.

광복을 위해 노력한 인사들의 유언도 비장하다.

청산리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이범석은 사나운 바람과 눈보라 곁에서 조국 땅에 한 줌 두엄으로 남기 위해 힘썼노라고 했다. 신흥강습소를 세운 김동삼은 나라 없는 처지에 몸 무덤은 일없으니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우라고 했고, 의사(義士) 안중근은 대한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주검을 하얼빈 공원 부근에 묻었다가 국권을 회복하면 고국으로 옮겨 달라고 하였다.

지난 5월 17일 타계한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유언을 보자.

인세는 굶주리는 북녘의 어린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의 굶주리는 어린이를 위해 썼으면 좋겠다. 시신은 화장해서 집 뒷산에 뿌리고 그동안 살았던 오두막을 없애 자연 상태로 돌려놓아라. 그리고 나를 기념하는 일은 하지 말라.

인세는 어린이 덕분에 생긴 것이니 어린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각각 60여 만 부나 팔린 <강아지똥>과 <몽실언니>의 인세 수입을 대부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그러고는 안동시의 한 마을에서 다섯 평 정도의 오두막집에서 지냈다.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아온 작가답게 자신(自身)을 눕힐 자리마저 포기했다.

“세월이 다하면 삼라만상이 다 사라지는데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걱정하는 이 작은 몸이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뼈와 살의 굳은 것은 다 흙으로 돌아가고, 피와 침 등 묽은 것은 다 물로 돌아가고, 더운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으로 돌아간다.

이 같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네 요소들이 각각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이제 죽은 몸이 어디에 남아 있겠는가”라는 무상계(無常戒)가 떠오른다. 네 요소가 잠시 모여 된 몸을 평생 떠받들고 살아가는 우리도 자신을 잠깐이라도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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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5/2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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