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TV 광고를 보노라면 “무이자~무이자~무이자~”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원래 광고 CM송이라는 게 반복해서 들려줌으로써 소비자의 무의식에 계속 맴돌도록 하는 의도성을 지녔지만 이 노래는 중독성이 특히 강하다.

대출에 목마른 사람들이라면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도 “무이자~무이자~”가 머리 속에서 툭툭 튀어나올 만하다.

이 노래는 1970년대 프랑스 최고의 미남미녀 배우였던 알랭 들롱과 달리다가 듀엣으로 부른 감미로운 샹송 ‘빠롤레, 빠롤레(Paroles, Paroles)’의 가사에서 ‘빠롤레’가 되풀이되는 부분만을 개사한 것이다.

‘빠롤레, 빠롤레’는 남자가 매력적이고 근사한 말로 여자의 사랑을 확인하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속삭임이 초콜릿이나 사탕처럼 달콤하기만 할 뿐 믿지는 못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무이자~’ TV광고가 한창 잘 나가는 유명 대부업체의 광고이니 말이다. 광고주와 광고대행사는 ‘빠롤레, 빠롤레’의 뜻을 알고 CM송으로 개사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무이자~’ 광고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그보다는 아무래도 노래가 갖는 중독성에 주목했을 터이다.

어쨌든 이런 아이러니를 차치하고라도 요즘 대부업체의 광고는 금도를 넘어선 것 같다. 사실상 며칠에 불과한 이자면제 기간을 미끼로 마치 무이자인 것처럼 서민들을 현혹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부업체 광고를 허용했다 하더라도 그처럼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현실을 곡해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도덕적 해이가 아니다.

이 광고는 결국 며칠 전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소비자 오인 표현’에 해당한다고 심의 결정을 내림에 따라 방송이 불허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진실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후약방문이 아닐까. 광고주와 광고대행사, 그리고 방송사가 모두 합작해 돈 없는 서민들을 잔뜩 꼬드긴 다음에 뒤늦게 광고를 중단해본들 시청자들에게 각인된 잔영까지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요즘 방송사들은 대부업체 광고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잘 나간다는 연예인들은 너도나도 그 광고에 웃는 얼굴을 들이밀고 시청자들을 유혹한다.

광고대행사가 받는 돈, 방송사가 챙기는 돈, 연예인들이 버는 돈, 이 모두가 결국 힘없고 돈없는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임을 그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높은 이자 때문에 개인도 가정도 파탄나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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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