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쏟아낸 노무현 대통령의 기념사를 읽으면서 20년 전 1987년 1월 17일자 동아일보의 ‘김중배 칼럼’이 떠올랐다. 칼럼 제목은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저 죽음을 응시해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끝내 지켜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다시 죽이지 말아주기 바란다.

태양과 죽음은 차마 마주볼 수 없다는 명언이 있다는 건 나도 안다. 태양은 그 찬란한 눈부심으로, 죽음은 그 참담한 눈물줄기로, 살아있는 자의 눈을 가린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군.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채 피어나지도 못한 꽃봉오리로 떨어져간 그의 죽음은 우리의 응시를 요구한다. 우리의 엄호와 죽음 뒤에 살아나는 영생(永生)의 가꿈을 기대한다.

“흑, 흑흑….”

걸려오는 전화를 들면, 사람다운 사람들의 깊은 호곡(號哭)이 울려온다. 비단 여성들만은 아니다. 어떤 중년의 남성은 말을 잇지 못한 채, 하늘과 땅을 부른다. 이 땅의 사람다운 사람들을 찾는다.

그의 죽음은 이 하늘과 이 땅과 이 사람들의 희생을 호소한다. 정의를 가리지 못하는 하늘은 제 하늘이 아니다. 평화를 심지 못하는 땅은 제 땅이 아니다. 인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 사람들이 아니다.(중략)>

필자는 87년 1월 17일 당시에는 한국일보 사회부장(그 후 2월 7일 부국장이 되어 ‘메아리’ 집필)이었지만 ‘김중배 칼럼’을 읽지 못했다.

올해 ‘6·10’을 전후해 하도 말이 많기에 한국일보에 ‘수요칼럼’을 쓰는 강준만 교수(전북대 언론학부)가 펴낸 <한국현대사 산책-1980년대 편 3권>을 읽던 중 이 칼럼을 발견했다. 김중배<1934년생. 한국일보 견습 7기(57년). 동아일보 사회부장(71년). 한겨레신문 사장(93년). MBC 사장(2001년) 역임> 씨는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 이 칼럼을 썼다.

이 칼럼은 87년 4월, ‘6·10 항쟁’이 일어나기 전에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나남 발간)>라는 제목으로 320쪽짜리 책으로 나왔다. 지금은 절판이다.

왜 이 칼럼에 대해 길게 말하는가? 노 대통령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6월 8일의 원광대 특강 발언, ‘6·10’기념사의 일부 발언을 들어 노 대통령을 선거법 위반혐의로 고발했다.

노 대통령과 언론과의 관계는 적대적이다. 노 대통령은 10일 기념사에서 말했다. 요지는 이렇다. <“지난날의 기득권 세력들이 수구 언론과 결탁해 끊임없이 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 심지어 국민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은 민주 정부를 친북좌파정권으로 매도하고,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음으로써 지난날의 안보독재와 부패세력의 본색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나아가 민주세력 무능론까지 들고 나와 민주적 가치와 정책이 아니라 지난날 개발독재의 후광을 빌려 정권을 잡겠다고 하고 있다. 과거 독재 권력의 앞잡이가 돼 눈과 귀를 가리고 민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했던 수구언론들은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세력을 흔들고 수구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노 대통령은 87년 1월 17일~6월 29일까지 어디에 있었을까.

필자가 사회부장 직을 떠난 87년 2월 7일, 노무현 변호사는 부산극장 앞에서 열린 박종철 추모집회에 김광일 (전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 문재인(현 청와대 비서실장) 변호사 등과 함께 참석해 경찰과 충돌했다.

세 사람 중 노 변호사가 시위대와 함께 아스팔트에 뒹굴고 법정에서 격렬하게 재판부와 검찰에 대들었다. 영장이 청구된 노 변호사는 “그런 일로 변호사를 구속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항의하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조력으로 영장이 기각됐다.

그해 5월 그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위원장이 됐고 88년 4월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노 변호사가 1월 17일의 ‘김중배 칼럼’을 읽었거나, 4월에 나온 칼럼집을 보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물론 ‘6·10’의 원천인 박종철추모대회에 왜 참가했는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말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김중배의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를 꼭 읽을 필요가 있다. 그가 부산의 변호사일 때 아스팔트 위에 드러누우며 부르짖었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건 ‘하늘’, ‘땅’, ‘사람’이 함께 사는, 정의가 하늘처럼 펼쳐진 언론과 정치, 평화가 깃든 한반도, 진보와 보수의 사람들이

인권 앞에선 하나가 된 나라가 아닐까.

노 대통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 언론토론회에 나갈 토론자들은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칼럼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필자: 박용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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