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의 의견이 같을 때 만장일치(滿場一致)라고 한다. 만장일치가 되면 서로 다툴 일이 없다. 따라서 만장일치가 최선의 의사 결정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게 항상 같을 수 있겠는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만장일치는 실현되기 어려울 뿐더러 커다란 위험을 안고 있다.

-천재교육, 『고등학교 』

교과서의 설명대로 만장일치는 주요 문제에 대해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실제로 동의해야만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에 대해 사소한 의견 불일치만으로도 사회가 마비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갖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 때문에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대의제적 다수결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

. 다수결 원리에 대한 신뢰는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의견 차이를 조정하여 어떤 결정에 이르는 방법으로서 다수결 원리가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정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음식점에서 요리를 시킬 때까지 다수결 원칙을 십분 활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친구들과 함께 중국 요리점에 들어간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데, 한 녀석이 “같은 걸 시켜야 빨리 나온다”며 메뉴를 통일하자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자동이다. 자장 셋, 짬뽕 하나, 볶음밥 하나. “사장님, 여기 짜장 다섯이요.” 다수결은 의견을 조정하는 요술지팡이다. 그러나 언제나 간달프의 요술지팡이인 건 아니다. 아래의 사고 실험을 통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다수결 신봉자’ 세 사람(A, B, C)이 중국 요리점에 갔다. 이들이 자장면, 짬뽕, 볶음밥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각자는 마음 속에 우선 순위를 정할 것이다. 이들이 마음 속에 정한 우선 순위가 아래의 표와 같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보다시피 세 명이 가장 우선으로 생각한 메뉴가 각기 다르므로, 그냥 투표를 해서는 메뉴를 결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들이 누군가? 다수결 신봉자들 아닌가! A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흐, 지난 번에 어떤 영화를 볼 건지 결정할 때와 같은 상황이군. 그렇다면 전처럼 해결하자.” A는 종이에 (자장, 짬뽕), (짬뽕, 볶음밥), (볶음밥, 자장)이라고 썼다.

그리고는 B와 C에게 물었다. “짜장인가? 짬뽕인가?” 위 표에 따르자면, B는 자장면보다는 짬뽕을 좋아하므로 짬뽕이라고 답할 것이고, C는 짬뽕보다는 자장면을 더 좋아하므로, 자장면이라고 답할 것이다.

물론 A는 자장면이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투표에서는 세 사람의 선호가 ‘자장>짬뽕’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런 방식으로 세 사람은 세 번의 투표를 했고, 그 결과를 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첫 번째 투표에서는 ‘자장면>짬뽕’이라는 결과가 나오고, 두 번째 투표에서는 ‘짬뽕>볶음밥’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수학에 젬병인 사람이라도 ‘자장면>짬뽕’이고 ‘짬뽕>볶음밥’이면 ‘자장>볶음밥’라는 사실을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럴 경우, 세 사람은 자장면을 시키면 된다. 그런데 세 번째 투표 결과는 이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만약, 세 사람이 정말로 다수결 신봉자라면 그들은 중국집에서 밥 먹는 걸 포기해야 한다.

다수결로는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저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문제라면, 누군가 쉽게 양보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만약 공동체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면 어떨까?

간단한 사고 실험이지만, 이 실험은 다수결 원칙이 ‘개인적 선호’를 ‘사회적 선호’로 옮기는 데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럴 경우에는 차라리 제비뽑기가 더 효율적이다.

다수결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좀 더 황당한 사고 실험을 해보자. 중국 음식점에서 다수결 원칙의 위기에 봉착한 세 사람은 다른 방법을 고안해냈다. 두 개씩 짝짓기를 한 게 문제였다고 생각한 B는 이번에는 세 개씩 짝짓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럴 경우, 가능한 순서쌍은 (자장면, 짬뽕, 볶음밥), (자장면, 볶음밥, 짬뽕), (짬뽕, 볶음밥, 자장면), (짬뽕, 자장면, 볶음밥), (볶음밥, 자장면, 짬뽕), (볶음밥, 짬뽕, 자장면)이다.

표결안이 6개로 늘어난 대신에 이제는 대안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방식으로 투표가 진행된다. 먼저 첫 번째 순서쌍인 (자장면, 짬뽕, 볶음밥)부터 살펴보자. 1차 투표는 자장면을 먹을 건지 말 건지에 관한 투표다. A는 찬성하겠지만, B와 C에게는 자장면이 최우선이 아니므로 반대할 것이다.

결국 자장면은 탈락! 2차 투표는 짬뽕을 먹을 건지 말 건지에 관한 투표다. A는 최선책인 자장면이 탈락했으므로 차선인 짬뽕을 택할 것이고, B는 최선책인 짬뽕을 택할 것이다. 결국 짬뽕이 선택된다. 이런 식으로 여섯 개의 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한 결과를 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결과에서도 드러나듯이, 어떤 순서로 표결되느냐에 따라서 표결 결과가 달라진다. 황당하지 않은가? 게다가 ‘자장면:짬뽕:볶음밥=2:2:2’라는 결과 때문에 어떤 결정도 할 수 없기는 첫 번째 시도와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차선보다는 최선을, 차차선보다는 차선을 선택한다면,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차차선보다는 최선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위의 사고 실험은 이와 위배된다. 다수결이 늘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말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일관적이고 합리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해볼 필요가 있다(인간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와 같은 거대 공동체에서 어떤 의사결정이 가장 합리적인가를 탐구하려면 시민들의 합리성 수준을 최대로 가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시민들이 모조리 비합리적이라면 시민들의 사회계약 자체가 비합리적일 것이고, 이는 곧 국가가 비합리적 계약에 의해서 탄생했다는 다소 무섭고 황당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의 설명대로,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만장일치적 직접민주주의’다. 보통 만장일치라고 하면, 전체주의적 의사결정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그렇지 않다.

만장일치는 일단 개인의 자율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준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찬성 혹은 반대를 결정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결정이 보류되기 때문에, 소수의 의견을 최대한으로 존중해 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또한 지속적인 의견 조정과 설득 과정을 통해서 최대한 많은 동의를 이끌어내서, 결과에 불복종하는 경향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의견을 조정할 때, 습관적으로 “다수결로 합시다!”라고 말한다. 다수결 민주주의가 언제나 최선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다수결 원칙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중요한 건 다수결 원칙이 아니라 민주주의다. 다수결 원칙이 언제나 효율적이거나 정당한 것은 아니며, 합리적이지도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다수결에 이끌려 다니는 사회는 정치적으로 나태한 사회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치열한 논쟁이나 의견 조정을 회피하고, 그저 표결의 결과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런 민주주의는 ‘??’이거나 ‘KIN’이다. 아니면 둘 다거나.

+ ??, KIN: 청소년들 사이에서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인터넷 용어

TOPIA 논술 아카데미 선임연구원

■ 약력

- 1977년생

- 서울대 종교학과 졸(2004년)

- 서울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졸업 (2006년)

- 현 TOPIA논술아카데미 강사

- TBS 교통방송 <윤은기의 굿모닝 서울> 문화 평론 프로그램 ‘이반의반격’진행

- EBS <손석춘의 월드FM> 문화 평론 프로그램 ‘이반의 천변풍경’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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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 i2u4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