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 지난 호(제2183호-2007. 7. 31.)에서는 ‘열사’와 ‘의사’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하며 ‘열사’든 ‘의사’든 국리민복을 위하여 무언가 해냈다면 오래도록 기림받아야 할 것이라며 끝을 맺었다. ‘기리다’란 “뛰어난 업적이나 바람직한 정신, 위대한 사람 따위를 추어서 말하다”이다. 기리어 칭찬하는 ‘상찬(賞讚)하다’와 비슷한 말이다. 예를 보자.

(1-1) 순국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순국선열의 날.

(1-2)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을 기리는 국제 음악제.

그런데 언론에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의미로도 쓴다.

(2-1) 추종자들이 이 날을 기리며 한바탕 잔치를 벌였는데! (중략) '태권V' 마니아들!

(2-2) 플라티니의 UEFA회장 당선을 기리기 위해 홈구장 이름을 그의 애칭 ‘르 로이(장군)’로

바꾸는 일.

(2-1, 2)는 어떤 뜻 깊은 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는 ‘기념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3-1) 어버이날을 함께한다. 아버지를 기리며…… .

(3-2) 고인을 기리기 위해 사고가 난 장애물 지점에 추모비를 세울 예정이다.

(3-1, 2)는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추도하다’의 의미로, 또는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추모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4-1) 비운의 죽음을 맞았던 사도세자를 기리는 진혼제.

(4-2) 카타니 DAGOC 사무총장은 경기 중 사망한 고인을 기리기 위해 선수가 실제 받는 금메달로

'명예 금메달'을 헌정했다.

(4-1, 2)는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주는 ‘위로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4-1)의 경우 사도세자가 나라를 제대로 다스려 보지도 못한 채 삶을 마쳐 ‘기림’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4-2) 역시 사망한 선수의 특별한 업적을 기린다기보다는 뜻하지 않게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 일을 ‘위로한다’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5) 고구마를 신으로 모시는 고구마 신사(神祠). 250여 년 고구마 전통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데……

.

(5)에는 추어서 말하는 ‘기리다’의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세상에 널리 알리는 ‘홍보하다’의 의도가 더 짙게 밴 것으로 보인다.

(6) 무궁화꽃이 나라의 무사 안녕과 삼천리강산에 평화를 기리는 모습 같습니다.

(6)의 무궁화꽃이 국가 안정과 국토 평화를 기린다는 말은 무리가 있다. 이는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기원하다’의 의미로 보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울 것이다.

위 용례에서 보듯 ‘기리다’는 의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국어사전의 뜻풀이만 고집한다면 (1)만 제대로 쓰였고 나머지 (2)~(6)은 잘못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시각을 달리하여 ‘기리다’가 의미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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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국어생활연구원 원장 gimhuijin@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