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감 용기’를 쓴 마이클 베스로스는 20세기 들어 ‘용기’에 행동을 넣어 ‘용감하게’(bravery) 일한 대통령으로 두 사람을 들었다.

<존 피치게럴드 케네디(1917~63년. 재임 1961~63. 월스트리트저널 베스트 랭킹 18위)와 로널드 레이건(1911~2004년. 재임 1981~89. 랭킹 8위)다.

베스로스가 ‘용감’의 상징으로 든 두 대통령의 행동은 국민에게 상황을 알리기 위한 TV연설인 것 같다.

케네디는 1963년 6월 11일 저녁 무렵 TV에서 5분간 연설했다.

<<우리는 커다란 도덕적 문제와 맞서있다….성경과 미국 헌법에 명백히 쓰여 있는 그런 문제다… 만약 한 미국인이 얼굴색 때문에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없고 투표를 할 수 없고 그의 아이들을 공공학교에 보낼 수 없고 그래서 여러분 중 누가 색깔을 바꾸거나 그냥 그대로 있어야 한다면… 링컨 대통령이 100년 전(1863년) 노예해방선언을 한 후에도 그들의 후예, 그들의 손자들이 아직도 완전히 자유스럽지 못하다…지금 남북의 도시에 좌절과 불화의 불길이 일어나고 있다. 커다란 변화가 있어야 할 때다. 우리의 의무와 책임은 이런 혁명과 변화를 평화적으로 건전하게 진행시켜야 한다.>>

케네디는 1년 넘게 미국 전역 도시에 일고 있는 흑인 소요사태를 해결키 위해 의회에 흑백분리 금지 시민권리 법안을 제출하며 연설한 것이다.

이 연설을 들은 흑인 영가의 가수 마하리아 잭슨은 말했다. “나는 미국 흑인인 게 자랑스럽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 대통령인 것도.”

흑인지도자이며 소요사태의 원천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케네디 대통령이 여지껏 남부의 백인 표를 노려 언급하지 않던 백인의 차별행위가 비도덕적이라고 한 것은 ‘새 케네디’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고 분석했다.

케네디 연설 후, 흑인차별문제에 관심을 보인 유권자는 7%에서 41%로 늘어났다. 케네디는 11월 22일 텍사스 달라스시에서 암살됐다. 달라스는 1960년 초선 때 60만표가 반대표를 던진 곳이었다. 케네디는 달라스의 변화를 기대하며 그곳에 갔었다.

그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남편의 총맞은 머리를 감싸야 했던 재클린은 피격 1주일 후 말했다. “잭(케네디의 애칭)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역사였다. 어린 소년시절부터 그는 침대에서도 책을 봤다. 책 속에는 숱한 영웅들이 있었다.”

케네디는 역사책 속에서 영웅과 용기있는 지도자를 찾아냈다. “정치는 올바른 일을 하겠다는 사람과 권력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사람의 싸움터다. 또한 일반 국민의 선을 위한 것과 개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과의 싸움이다.”

재클린은 남편 케네디를 ‘국민의 선’을 용감하게 지킨 정치인으로 평가한 것이다.

케네디 연설이 있은 지 27년 후, 1987년 6월 12일 베를린시 개도(開都) 750주년 기념일.

레이건은 아직도 장벽이 있는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앞에 섰다. 망원경으로 본 장벽 동쪽, 동 베를린에는 이를 보고 들으려는 동독 시민들을 경찰이 쫓고 있었다.

<<우리는 요즈음 모스크바에서 개혁과 개방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런 뉴스가 정말로 변화가 있다는 것일까요. 한낱 몸짓일까요…. 고르바초프 서기장.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평화를, 소련과 동구의 번영을, 원한다면, 또한 해방을 원한다면. 이 문으로 오시오!… 고르바초프씨! 이 문을 여시오. 고르바초프씨! 이 장벽을 허무시오.>>

레이건은 평소와는 다르게 고함쳤다.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장벽을 허무시오” 대목에서는 배우출신으로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레이건 답지 않게 화난 소리를 냈다.

‘허무시오’ 라는 표현을 넣을 때 백악관에서는 소동이 있었다. 이 대목이 87년 말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인 미소 정상회담을 해치지 않을까 해서 였다.

레이건은 연설문 작성자를 불러 ‘용감’하게 말했다. “내가 대통령 맞소. 그렇다면 나는 결정했소. ‘고르바초프씨!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는 내용을 즉각 연설문 끝에 써넣으시오.”

세계의 언론은 87년 그때는 특히 신문에서는 이 대목을 1면에 실지 않았다. TV들은 “허무시오”를 브란덴부르크문 동쪽인 동독을 비치며 방영했다.

1989년 레이건은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대통령 직을 떠나서야 볼 수 있었다.

레이건은 90년 베를린을 방문, 많은 그 곳 시민들이 그에게 감사를 표시하자 말했다. “나에게만 감사하지 마시오. 고르바초프가 없었다면 장벽이 무너졌겠소.”

베스로스는 “케네디와 레이건의 연설은 보통의 신념을 넘는 연설이요, 그 연설을 있게 한 근원은 올바른 것에 대한 도덕감에 기초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노 대통령과 대선주자들이 새겨들을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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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