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사회 각 분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철학 분야에서는 스펜서, 베르그송 등의 철학 체계의 토대가 되었고, 인류학에서는 진화주의라는 학설을 발생시켰다. 그러나 다윈의 적자생존설은 잘못 도입․이해되기도 하여 인종 차별이나 약육강식을 합리화하고 근대 서구 열강의 식민 정책을 옹호하는데 이용되었던 ‘사회적 다윈주의’를 낳기도 했다.

-지학사, 고등학교 생물 1.

진화론에는 두 개의 선택설이 있다. 하나는 ‘자연선택설’이며 나머지는 ‘성(性) 선택설’이다. 자연선택은 자연의 모든 개체들에게 적용되므로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볼 때, 진화에는 성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가뭄과 질병은 남녀 모두에게 위협이 되고, 이 위협을 극복한 개체들만 자신들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선택만으로는 개체의 형질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 널리 알려져 있듯, 수컷 공작의 화려한 깃털은 자연선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깃털이 화려할수록 거기에는 많은 에너지가 투자되어야 하며, 포식자에게 발각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선택에 따르면 화려한 깃털을 가진 공작은 도태되어야 한다.

다윈 역시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공작의 꼬리는 배우자를 유혹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화해 왔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형태의 선택을 ‘성 선택’으로 명명했다. 수컷 공작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암컷은 좀 더 건강하고, 좋은 형질을 가진 수컷을 원한다. 대부분의 동물사회에서는 암컷이 배우자를 선택하기 때문에 수컷들이 간택되기 위해서는 암컷의 기준에 부합하는 형질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공작의 경우에는 그 형질이 바로 화려한 깃털이다. 화려한 깃털은 능력 있는 수컷이라는 증표다.

깃털을 관리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으며, 그로 인한 위험을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는 수컷은 암컷에게 최상의 배우자로 여겨질 것이다.

세상에 널린 게 수컷이고 그 많은 수컷과 일일이 데이트를 해서 품질을 확인하기엔 교배 가능한 기간이 짧기 때문에 암컷들은 화려한 깃털을 좋은 형질의 증표로 삼고, 경쟁적으로 화려한 깃털을 선호하게 되었다.

왜 하필 깃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암컷들이 어느 순간부터 화려한 깃털을 선호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제 수컷들 역시 화려한 깃털을 위한 무한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공작의 깃털과 관련된 재밌는 실험이 있다. 실험 대상 수컷 중에서 가장 화려한 깃털을 가진 수컷의 깃털을 다듬어 보잘 것 없이 만들고, 밋밋한 깃털을 가진 수컷을 인위적으로 치장하여 암컷에서 선보였다.

일종의 성형수술을 한 거다. 암컷들은 당연하게도 성형수술을 한 수컷을 선택했다. 즉, 수컷이 실제로 가진 능력을 확인하지 않고 증표(화려한 깃털)만 가지고 수컷을 선택했다.

인간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진화론에 따르면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해서 남성은 사회적 지위, 기술, 힘, 용기 등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들은 아마도 인류 초기부터 선호되었던 형질일 것이다(본능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초기 인류와 거의 같다).

여성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고, 사냥능력이 뛰어난 남성을 ‘멋진 남자’로 평가한다. 물론 현대에는 ‘사냥능력’이 ‘경제능력’으로 전환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급 사냥꾼임을 암시하는 신체적 지표들은 여전히 여성들의 마음을 더 뒤흔들어 놓는다.

반면, 남성은 다산(多産)의 증표를 가진 젊거나 예쁜 여자를 원한다. 이건 본능이다!

만약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자신들만의 부와 지위를 쌓는 것이 봉쇄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이를 대신하기 위해 높은 지위와 부를 가진 남성을 선호한다면, 높은 경제적 위치의 여성일수록 배우자에게 경제력을 기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잘난 여성일수록 잘난 남성을 원한다. 심지어는 페미니스트들조차 그렇다.

반면, 남성들에게 여성의 경제적 지위는 부차적이다. 여성들은 예쁜 남성보다 돈 많은 남성을 원하고 남성들은 돈 많은 여성보다, 예쁜 여성을 원한다. 그것도 최대한 많이.

남성들은 양육에 거의 투자할 필요가 없다. 아이를 임신하고 10개월간 뱃속에서 키우는 건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성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전략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남성의 바람기는 이러한 전략 때문에 등장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럴 수 없다.

일 년에 낳을 수 있는 태아의 수는 정해져 있고 임신, 출산, 양육은 여성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위험하고 벅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신중하게 파트너를 결정해야 한다.

여성들은 자신을 유혹하는 남성이 임신 후에도 자신의 곁에 남아있을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특히 섹스와 임신 사이의 연관성을 인식한 이후에 신중한 파트너 선택은 중요해졌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인간 관계와 언어에 더 민감하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물건에 집착하는 반면, 여성은 사람에 집착하고,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도 여성이 더 뛰어나다.

이런 능력들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으나 성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남성 고르기 능력’의 일부다.

영원히 사랑할거라고, 절대 바람 따윈 피지 않겠다고 끊임없이 ‘뻐꾸기를 날리는’ 남성의 마음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해, 또 파트너의 거짓말을 감지하기 위해 여성은 남성보다 더 뛰어난 독심술과 언어능력을 갖게 되었다.

반면, 남성은 더 많은 여성을 얻기 위해 더 높은 지위를 추구하고, 더 많이 경쟁하고,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경향이 발달했다.

이는 오늘날 직장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성공적인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들에 대한 직접적인 차별이 ‘유리 천장(glass ceiling)’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

여성 직장인들이 고위직으로 승진하려 해도 회사 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천장(그래서 유리 천장이다)이 직급 최상한선을 제한한다는 말이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모두 ‘사회적으로만’ 구성된다는 믿음은 터무니없다. 이러한 믿음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유전적 차이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들이 동등한 ‘빈 서판(blank slate)’을 지닌 채 태어난다고 가정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간이라는 추상적 가치로 동질화시키는 건 과학적이지도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많은 연구들이 ‘평균적으로’ 여성은 일을 가정에 맞추려 하고, 남성은 가정을 일에 맞추려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가사노동을 담당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만족을 얻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각 개인들이 어디서 더 큰 만족도를 얻느냐이다.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꾸려가는 것을 통해서 큰 만족감을 느끼는 여성에게 왜 사회생활을 하지 않느냐고 추궁하는 건 난센스다. 이는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끼는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특정 개인의 만족감이지, 남성 전체와 여성 전체의 만족감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에게 각기 고정된 남성성과 여성성을 부여하고 그에 부합한 사회적 역할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남성과 여성의 평균적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남녀를 동질화시키려는 시도 역시 맞지 않다.

성적 불평등을 ‘여성의 생물학적 비극’으로 간주하고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무시한 채 집단 사회화를 추구했던 이스라엘의 키부츠 운동의 결과를 보라.

키부츠에서도 성차에 따른 행동의 차이는 어린 시절부터 나타났고(인형을 가지고 논다고 남자아이가 여성스럽게 되는 건 아니다), 결국 여성들에게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성취의 중요한 원천이라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키부츠의 이러한 회귀가 기존 가부장적 질서를 정당화해준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된다.

누차 강조하듯,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평균적일 뿐이다. 여성 중에서도 남성과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 역도 성립한다. 각 개인은 자신이 가장 큰 만족감을 얻는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때 생물학적 차이로 나타나는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환원시켜서는 안 된다. 예컨대, 유리천장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해도, 여전히 남성들이 고위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남성들이 더 많이 경쟁하고, 더 높은 지위를 추구하며,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경향이 평균적으로, 또 본성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 아는 것과 그 본능으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문화적 현상들을 정당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남성의 폭력성이 더 강하다고 해서, 남성들의 폭력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에 따르면 “인류는 새로운 본성을 가진 인간을 키우거나 사회화한 것이 아니다. 다만 과거의 본성들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을 뿐이다.”

성차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남녀의 차이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하며, 이에 적합한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 심원 TOPIA 논술아카데미 선임연구원 약력

- 1977년생

- 서울대 종교학과 졸(2004년)

- 서울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졸업(2006년)

- 현 TOPIA논술아카데미 강사

- TBS 교통방송 <윤은기의 굿모닝서울> 문화 평론 프로그램 ‘이반의반격’ 진행

- EBS 손석춘의 <월드FM> 문화 평론 프로그램‘이반의 천변풍경’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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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 i2u4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