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는 성인과 같지만 정신은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되는 청소년은 기성세대에게는 늘 두려운 존재이다. 사진은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바닷가에서 성인식을 치르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
청소년기가 중요한 이유는 이 시기에 육체의 힘은 성인처럼 커지지만, 아직 정신적 기능은 성인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체와 정신의 괴리는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중략) 인격의 미성숙 및 정신적 기능의 지체로 인하여 청소년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기가 쉽다. 청소년기에 겪게 되는 대표적인 문제로는 가출, 음주, 흡연, 약물 오남용, 성 충동, 학교 폭력, 기타 사회 범죄 등을 들 수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고등학교 도덕』

기호학에서 대립항 사이에는 논리적으로 S와 -S의 관계가 성립한다.

예를 들어, 여성(S)⇔남성(-S), 인간⇔기계, 정신⇔물질, 실제현실⇔가상현실, 문명⇔자연 등. 논리적으로는 S이면서 -S인 것이 존재할 수 없지만(S∩-S〓∅) 현상적으로는 양성구유(兩性具有)적인 존재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반인반마(半人半馬) 켄타우로스 같은 모순적 대상이 존재한다. 이처럼, ‘이항대립’을 기초로 하는 ‘의미망’에 걸리지 않는 대상은 ‘예외적인 범주’로 구분된다.

예외적인 범주에 속하는 존재들은 특별한 대접을 받아 왔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은 선망의 대상이지만, 조선 시대의 ‘사방지’(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와 같은 존재는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다. 물론 이들이 받는 특별한 대접은 그들이 예외적인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예외적인 범주에 속하는 존재들은 사회에서 추방되거나 ‘통과제의’를 통해서 정상적 범주 속으로 편입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은 ‘어른:어린이’라는 이항대립을 전제로 한 의미망 속에서 ‘예외적 범주’에 속하게 되며, 성년식이라는 통과제의를 통해서 비로소 어른의 범주로 편입하게 된다.

이 때,통과제의는 ‘예외적인 범주’에 속하는 존재를 의미론적으로 S나 -S에 속하는 존재로 변형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에 대한 교과서의 설명도 이러한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육체는 성인과 같지만 정신은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되는 청소년은 기성세대에게는 늘 두려운 존재다. 그들은 내부에서 찾아오는 이방인이며, 기성세대가 키우는 에일리언이다.

세대(世代)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역사는 세대 간 투쟁의 역사다. 굳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끌어 들이지 않더라도, 한 가족 안에서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간에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은 이러한 ‘세대투쟁’을 잘 보여준다.

청소년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억압은 자신들이 건설해 놓은 사회적 가치들을 허물고 새로운 사회를 세울지도 모르는 아랫 세대들에 대한 공포를 반증한다.

프레이저가 <황금가지>에서 썼듯, 부권(父權)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지배는 ‘친부살해’라는 카니발로 끝나버릴 수 있다는 공포 말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지배와 통제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청소년을 무엇인가 결핍된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 전반의 시각이 기성세대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일차적 버팀목이랄 수 있다. 청소년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애매한 존재’로 규정한다. 따라서 그들의 권리 또한 애매하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청소년들의 두발 규제를 들 수 있다. 가끔 고등학교에 강의를 하러 가면, 이건 숫제 군인들인지 학생들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인권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인 ‘신체의 자유권’마저 빼앗긴 채, ‘무동기증후군’에 빠진 사람처럼 축 처져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젠 무서울 지경이다. 자기 머리털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과연 인간인가?

그러면서도 교과서에는 자유가 어쩌니, 자유주의가 어쩌니 지껄이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다(뭐, 그래서 ‘교과서’이겠지만).

가끔 한국사회가 청소년을 인간 취급 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고등학교 강의 중에 퍽! 퍽! 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면 더욱. 결국,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시민의 자격을 갖춘 성인(成人)에게만 있다.

청소년 노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에게 ‘청소년 노동’은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나 어울릴 만한 말이다.

청소년 시기에 노동을 한다는 것은 결국, ‘정상적인’ 임금 노동자가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인 ‘대학진학’을 포기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자기 집 자식이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주장할 때, “오냐 장하다”라며 등을 두들겨 줄 부모는 흔치 않다. 대부분은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공부나 하라”고 다그칠 거다.

설령 부모를 설득해서 알바를 하게 되도, 그들이 벌 수 있는 돈은 시간당 3,000원 정도에 불과하다(한국의 2007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3,480원이다).

그것도 임금을 떼먹거나, 편법을 써서 임금을 잘라 먹는 악덕업주를 만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중남미에서만 청소년 노동 착취가 있는 게 아니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노동권 보장 역시 ‘그들만의 리그’에서나 적용되는 룰이다.

경제권의 독점은 기성세대의 지배를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완전히 의존해야 하는 청소년들은 결국 부모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런 식으로 나오면, 용돈 안 준다!”는 협박은 참 비열하다. 용돈을 대신할 어떤 소득원도 차단해버린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다 너를 위해서다”라는 말은 언제나 가장 설득력이 높은 변명 중 하나다. 현실적으로 알바만으로는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알바를 위해 공부를 멀리하는 건 한국 사회에서는 자폭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학을 간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나은 것도 아니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상이야 어떻든지, 현실은 그렇고, 청소년들도 이미 뼛속 깊이 아는 사실이다.

대학 진학은 결국 노동력의 가치 혹은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그나마 그들의 부모세대인 ‘386세대’ 때와는 달리(그들은 대학 졸업장만으로 취업했던 거의 마지막 세대다), 이미 대학 교육만으로는 ‘승자독식’의 경쟁에서 살아남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런 변화를 미리 눈치 챈 것인지는 모르지만, 원정출산, 조기교육, 조기유학 등은 모두 386세대가 부모노릇을 하는 과정에서 급속히 등장했다.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그들의 정치적 태도가 자녀 교육 문제에서는 어쩌면 이렇게 보수적일 수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이런 점에서 ‘386세대=진보’라는 등식은 일종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됐든 386세대가 누렸던 대학의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들의 자녀들은 무한경쟁을 체화한 채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으며, 이는 대학 교육으로까지 연장된다.

그러나 이미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한국 경제의 현실은 청소년들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장벽이 될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학점관리, 외국어 공부에만 열중해도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정규직 자리는 제한되어 있다.

이미 유신세대와 386세대들이 경제적 기득권을 확실히 움켜쥐고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세대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형뻘 되는 현재의 20대와 삼촌뻘 되는 X세대, 아버지뻘 되는 386세대와도 경쟁을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청소년들의 승산은 매우 낮아 보인다.

결국, 최근 회자되고 있는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단지 현재의 20대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비정규직의 수가 800만을 넘었고, 이는 전체 노동자의 60%에 달하는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에게 “너희는 뭐든 될 수 있다”고 다독이는 건 염치없는 짓이다.

학생들은 이런 내용의 수업을 들으며 눈을 반짝인다. 직감적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점쳐 보는 거다. 물론 감이 안 오는 인간들은 여전히 존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리고 간혹 울분에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 인간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나는 이 정도의 대답밖에 할 수 없다. “미안하다.”

우리는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여긴다. 정말로 청소년을 보호하려거든 이제 그들의 미래까지 보호해야 한다. 아니면 정말로, 분노한 청소년들의 ‘친부살해’ 카니발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 심원 약력

- 1977년생

-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2004년)

- 서울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졸업(2006년)

- 현 TOPIA논술아카데미 강사

- TBS 교통방송 <윤은기의 굿모닝 서울> 문화 평론 프로그램‘이반의반격’진행

- EBS 손석춘의 <월드FM> 문화 평론 프로그램‘이반의 천변풍경’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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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 TOPIA 논술 아카데미 선임연구원 http://creativelab.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