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8월22~27일 관광했다. 미국 언론인 존·리드가 1919년에 쓴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보면서였다.

리드는 1917년 9월 당시 페트로그라드로 불리던 러시아제국의 수도에서 미국인 기자로서 혁명의 순간 순간을 적었다. 볼세비키의 소비에트 회의에 10월 25일 나타난 레닌, 트로츠키 등의 모습을 그는 생생하게 묘사했다.

볼세비키가 사령부를 차렸던 스몰리회관은 이번 관광코스에 없었다. 2003년 개도3백주년을 치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924년 레닌이 사망한 후 레닌그라드로 불리다가 옐친이 1991년 소비에트를 해체, 러시아로 복원시킨 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됐다.

이 ‘혁명의 도시’는 이제 ‘예술의 도시’, ‘금융의 도시’, ‘관광의 도시’가 되었다. 2007년 러시아혁명 90주년을 맞는 도시에서 혁명의 흔적은 찾아 보기 힘들었다.

모스크바도 마찬가지였다. 모스크바의 8월은 1990년대에는 혁명 개혁 변혁이란 ‘돌발사태’가 일어난 시기였다. 91년 8월 고르바초프는 KGB의 쿠데타를 맞았다. 93년 8월 옐친은 새 헌법을 만들고 이를 반대하는 의사당을 포격했다. 98년 8월에는 외환위기가 닥쳤다. 99년 8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총리가 됐다.

이런 모스크바의 8월 ‘돌발’은 푸틴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사라졌다. ‘돌발’은 ‘입방아’로 변했다.

타블로이드 신문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8월22일자에 난 ‘웃통벗고 낚시하는 푸틴의 알몸사진’이 모스크바 가십의 중심이 됐다. 1917년 11월 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시위로 5백여명이 죽어 함께 묻힌 무덤은 광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혁명은 보이지 않았다. 2007년 8월 모스크바 시민들의 입방아 내용은 왜 푸틴이 알몸 웃통사진을 공개했을까였다.

라디오토크쇼 사회자인 에브게니아 알바트는 코멘트했다. “물론 이 사진은 유권자를 향한 푸틴 개인의 호소다. 그건 선거를 향한 강한 의사표현이다…. 어떻든 대통령의 알몸 웃통사진은 좀 그렇다.”

이를 들은 여성 청취자들은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사진에 대해 험담했다.”며 알바트를 이메일로 공격했다.

크렘린 공보실은 이 사진들을 공식 홈페이지에 실었고, 웃통을 벗고 강가를 거니는 모습 등을 통해 드러난 푸틴의 탄탄한 몸매에 찬사가 밀려 왔다.

크렘린 측은 이 사진 외에 푸틴이 말을 탄 모습, 강가에 검은 안경을 벗고 미소를 짓는 모습 등을 여러 매체에 소개했다.

정치평론가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이 사진들을 평했다. “여지껏 푸틴의 모습은 쿨(cool)한 것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서의 푸틴의 이미지는 차가운 것이었다. 이번 사진은 이를 바꾸어 놓았다.”

마르코프는 분석했다. “보리스 엘친(2007년 4월 졸)의 이미지는 술 주정뱅이였다. 푸틴 이미지는 심각하고 정력적이며 맑고 영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마 유도 등으로 관련된 스포츠맨이기에 나온 이미지다.”

푸틴의 알몸웃통은 매끄럽고 단단하다. 그는 레닌그라드시의 유도 선수권자였다.

푸틴은 매일 30분이상의 운동에 대해 말했다. “스포츠는 나에게 세계와 인간을 보는 눈을 가져다 주었고 그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의 유도코치였으며 측근 고문인 바실리 쉐스타코프는 유도가 푸틴의 인격과 정치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했다. “푸틴은 중학교 때부터 유도를 했다. 키가 작았던 그는 유도를 통해 키를 키우려 했다.

그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경기에 임하는 유도를 페어플레이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특히 그가 레닌그라드시장으로 모셨던 부패혐의자 아나톨리 쇼브차크(2000년 졸), 엘친 등에 충성을 바친 자세는 유도에서 배운 것이다.”

푸틴은 유권자에게 대중적 인기를 얻으려는 제스처를 쓰지 않는다. 쉐스타코프는 국가주의자인 푸틴이 유도에서 배운 충성심과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러시아에 바치고 있다고 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모스크바 특파원이었던 앤드류 잭은 98년부터 6년간의 취재를 마무리 하며 2004년 ‘푸틴의 러시아 내막기’을 썼다. 앤드류 잭은 푸틴을 요약했다. “푸틴은 1952년 10월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15년간을 KGB에서 일한 레닌대학 법학부 출신 변호사. 그는 엘친에 의해 발탁되었지만, 법과 질서를 지키는, 음모와 술수에 능하지 않은 국가주의자다. 푸틴은 어느 역대 지도자보다 이성적이다. 그는 자유주의적 권위주의자이다. 그는 눈치를 보며 원칙을 깨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 여권의 50대 주자들의 알통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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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