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여성의 경제력이 남성과 비슷해지고, 시회적으로 양성평등 개념이 확산된다면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이 커질 것이다. 사진은 축구스타 김남일 선수와 김보민 아나운서가 결혼발표 기자회견장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
결혼은 사랑과 성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의미한다. (중략)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급격히 증가해 왔다. 이는 결혼을 “살아보고 서로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라든가, “동거해 보고 맞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식의 어떤 조건적인 결합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대변해 주고 있다. (중략) 결혼은 성적 욕망을 호혜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한 타협이 아니라 인격의 실존적 통합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간통이나 혼외정사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교육인적자원부, 고등학교 시민윤리

대학원 시절, 한 선생님이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공부를 하려거든 연애를 말고, 연애를 하려거든 결혼을 말고, 결혼을 하려거든 아이를 갖지 말지어다.” 물론 그 선생님은 결혼도 하셨고, 자식도 있다.

당신은 할 것 다해보고 이제 와서 후학들에게 저런 끔찍한 폭언(?)을 일삼으시니 그 말을 듣는 청춘남녀들은 술잔을 들이키며 울분을 삼킬 수밖에.

결혼 유경험자가 결혼에 대해서 말하면 그나마 그 속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으려니 하고 들어줄 수 있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결혼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면 대번에 “해보고 말해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입장도 그렇다. 그러나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나?” 주변에 널린 ‘결혼’들의 모양과 냄새만으로도 결혼이 어떤 것인지 대강 짐작 가능하다.

교과서에서는 결혼은 사랑과 성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서 일부일처제가 정당화된다. 이게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이러한 배타적 독점권이 사회적 제도로 형성된 이유는 바로 ‘질투’라는 인간 본성 때문이다. 인간은 질투하는 존재다. 특히 성적인 이유에서 촉발되는 질투는 치정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강력하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성별에 따라서 질투가 나타나는 양상이 다르다고 말한다.

요약하자면, 남성은 육체적(성적) 불륜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여성은 감정적 불륜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배우자가 성적 불륜을 저질렀을 경우 나중에 태어난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지도자로 등극한 수컷 사자는 기존의 지도자가 낳은 새끼들을 모두 죽여 버리며, 인간 사회에서는 의붓아버지에 의한 아동학대가 훨씬 빈번하다.

반면, 여성은 자신에게 투자되는 배우자의 자원이 다른 여성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 때문에 남성과 여성이 질투를 느끼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질투는 곧바로 독점욕이나 집착으로 연결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사랑, 독점욕, 집착을 서로 구별해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어찌됐든 개체의 번식과 생존을 위해서는 남녀모두 배우자에 대한 독점이 필요했고, 인간은 질투하는 존재로 진화했다.

그러나 질투가 보편적 본성의 일부라고 해도, 이를 바탕으로 일부일처제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윤리교과서에서는 “현대 문명사회에 가장 일반적인 결혼 제도는 일부일처제이다. (중략) 통상적인 조건에서는 일부일처혼이 결혼의 원형이라는 것이 오늘날 인류학자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라고 적고 있다.

일부일처제가 가장 정상적인 결혼제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의 인류학적 연구는 인간이 그동안 거쳐 온 문화들은 대부분 명백한 일부다처제였다는 강력한 증거들을 제시한다.

수렵채집문화에서 가장 매력적이고(성적 매력), 가장 큰 존경을 받고(사회적 지위), 가장 지능이 뛰어나고(지적 능력), 가장 사냥솜씨가 뛰어난(육체적 능력) 남성은 많은 여성으로부터 성적 관심을 받는다.

문화권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런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유목문화권에서는 소유한 가축의 수에 따라, 농경문화권에서는 토지, 재산의 소유량에 따라서 남성의 성적 지위가 결정되었다.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일부일처제를 종교적, 법적 관행으로 삼았지만 권력을 가진 남성들은 많은 수의 여성을 거느렸다. 축첩제도가 일반적이었던 동양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일부일처제만을 보편적이고 당위적인 결혼제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 중심의 유럽적인 사고방식이다. 오히려 인간은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처제 사이에 걸쳐있는 ‘느슨한 일부일처제’를 유지해 왔다고 봐야 한다.

느슨한 일부일처제를 달리 표현하면 일정 기간 동안 서로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인정하지만, 파트너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 ‘연속적인 일부일처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성적 ‘다다익선’을 추구하는 남성과 양육에 필요한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여성 모두에게 이로운 전략이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한 명의 여성에 대한 섹스권을 독점함으로써 장차 태어날 아기가 친자임을 확인할 수 있고, 여성의 입장에서는 양육에 필요한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여전히 여성은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남성은 아이가 친자임이 확인된 후에는 더 이상 자신의 아이를 낳아준 여성에게 필요 이상의 자원을 제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또 다시 ‘다다익선’의 전략을 따라, 다른 여성에게서도 자신의 아이를 낳으려 할 것이다. 이럴 경우, 남성은 아이만 데리고 사라져 버릴 수 있다. 반면, 여성은 좋든 싫든 아이를 양육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자원을 제공해 줄 또 다른 남성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친자가 아닌 아이에게 사랑을 쏟아 줄 남성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변수는 양육자원을 누가 공급할 수 있는가이다.

아직 부족하기는 하지만 최근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이 양육자원을 스스로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을 막아왔던 건 경제권을 독점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유리했던 번식전략을 유지하기 위한 남성들의 전략이 아니었을까?

여하튼 최근 여성들의 경제력 신장은 더 이상 여성들이 남성으로부터 양육자원을 얻어 써야 하는 상황이 종결되었음을 의미한다.

교과서에는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나, 동거율의 증가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더 이상 여성들이 결혼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싱글맘’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이를 혼자서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단지 경제적 이유만으로 남성에게 빌붙어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교과서의 주장처럼 ‘결혼이 인격의 실존적 통합’이 될 수 있으려면 먼저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혼이나 ‘싱글맘’에 대해서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남성의 경제적 자원 독점과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를 인정하는 셈이다.

여성의 경제적 능력 신장은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고, 인간 본성은 수백만 년에 걸쳐서 진화해 왔으므로, 여전히 인간은 과거의 본성에 따라서 배우자를 선택하고, 기존의 결혼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부일처제는 생물학적 본성이 결혼제도에 반영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느슨한 일부일처제를 유지해왔고,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 좀 더 일부일처제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고, 일부다처제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만약 여성의 경제력이 남성과 비슷해지고, 사회적으로 양성평등 개념이 확산된다면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이 커질 것이다. 이럴 경우, 애가 타는 건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체면을 유지해주던 경제적 독점권을 상실한 남성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뿐. 하나는 수도승(!)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성의 간택을 받기 위해서 연애머신이 되는 것이다. 남성들이여 ‘인격의 실존적 통합’을 원하는가? 그럼 더욱 분발하시라!!!

*다소 염장 지르는 추신: 다행히 필자는 조만간 결혼식을 올리고, 일부일처제를 몸소 경험해보기 위한 장도에 오를 계획이다. 아직 간택 당하지 못한 남성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쿨럭!).

TOPIA 논술 아카데미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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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 http://creativelab.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