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를 인정합니다. 경선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결과가 발표된 직후 박근혜 후보의 선언은 감동을 던져주었다. 많은 이들이 “아버지가 민주주의에 진 빚을 딸이 다 갚았다”고 느꼈다.

많은 이들이 9월 2일 대구에서 있은 선대위 해단식에서 박 후보가 “내가 한일 있다”는 발언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누구도 박 후보가 그토록 목메어 찾던 ‘아버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미처 외치지 못했던 한마디는 생각지 않았다.

박 후보는 경선 1개월 전인 7월 23일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박근혜 자서전’을 냈다.

그녀의 대선 출사표이지만 351쪽의 책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알알이 박혀있다. 이를 길게 인용한다.

<<아버지 36세, 어머니 28세의 좀 늦은 나이에 본 첫딸이었기에 두분 모두 나에 대한 애정이 깊으셨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로맨티스트였다.

…딱딱한 군인이미지와는 달리 아버지는 가족에게 더할 수 없이 다정한 분이셨다. 시를 써서 어머니에게 선물하셨고, 그림도 즐겨 그리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온 가족이 여름휴가를 가던 날 차 안에서 아버지가 지만이를 스케치하던 모습이다.

…하루는 진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고 아버지가 물으셨다. 나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가 이유를 물으시기에 청와대를 방문한 한 박사가 “조그만 트랜지스터 하나가 20~30달러나 하고, 007 가방 하나 분량이면 몇만 달러나 한다.

대한민국은 전자산업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업역군이 되어 나라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나와 계셨다. 굳게 다문 입술과 눈빛에서 아버지의 아픔이 느껴졌다. 창백하게 질린 내 얼굴을 보고 아버지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 듯했지만, 아버지는 곧 평소의 표정을 되찾으셨다.

아버지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입을 굳게 다문 채 그저 내 등만 계속 쓸어주셨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았다. 온몸의 뼈마디가 저려 오는 듯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가족이 모두 공황상태에 빠져 두렵고 혼란스런 밤이었다.(74년 8월 16일)

…1970년대 중반부터 아버지는 서서히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고 계셨다. 9대 대통령으로 취임(1978년 7월6일 당선)한 지 1년도 안된 때였는데,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적합할까”하고 물으신 적이 있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꿈꾸시던 조국의 근대화 작업이 어느 정도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아버지는 혼란없는 정권이양을 위해서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 계셨다. 퇴임 후 남쪽으로 낙향해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하며 평화로운 말년을 보내고 싶다는 말씀도 여러 차례 하셨다. 어느 날은 황폐해진 작은 산을 사서 거기에 꽃과 나무를 심는 재미로 살고 싶다고 하셨다. “젖소도 두어 마리 있으면 좋겠지? 방학마다 손자, 손녀들이 놀러 와 시끌벅적하게 지내는 것도 즐거울 거야”

이 말을 하시던 날, 나는 아버지가 어떤 결단을 내릴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한 노년을 보내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가 왜 이런 심경에 도착했는지에 대해서는 ‘절망은…’에서 분석하지 않았다.

지난 7월 6일 ‘한국산업사회학회’를 ‘비판사회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회장이 된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1956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80년). 연세대 사회학 박사(92), ‘한국사회 구성체논쟁(89년)’ 등 14개 책 저술). 그는 8월 13일 역사비평사가 내린 ‘20세기 한국사’ 전 20권의 하나로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5ㆍ16에서 10ㆍ26까지>를 냈다.

여지껏 진보, 보수로 양분되어 보던 한국현대사를 이념, 이론보다는 사실(史實)과 실제에 입각해 대중을 위한 역사서를 쓰겠다는 것이 이번 발간의 뜻이다.

조 교수는 박 후보의 ‘아버지!’가 집권했던 61년 5월 16일, 암살된 79년 10월 26일, 87년 6월 항쟁까지를 ‘박정희…’에서 나눴다. 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박정희 체제는 분명히 개발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모델이었지만, 실상은 ‘위기의 모델’이자 조야한 폭력성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이제 박정희를 추모하더라도 그런 부정성을 극복한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할 과제가 보수에게도 주어져 있다. 박정희가 ‘산업근대화’를 내세우며 탄압했던 바로 그 민주주의와 복지에 의해 재구성된 모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얼굴의 박정희가 있다.

초기에 기성 정치권의 부패에 분노하는 우국충정의 박정희, 민족적 민주주의를 표상하는 박정희, 1970년대 미사일 개발을 강행하고자 했던 박정희, 국사교육과 스포츠 용어의 한글화를 시도했던 박정희, 마피아 두목같이 수하를 거느리며 보스처럼 국가를 통솔했던 박정희, 엽색행각을 일삼는 박정희, 그린벨트를 선포한 박정희, 대재벌에 대한 국가적인 통제를 시도했던 박정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도 보수 내부에서 박정희를 보는 인식이 다원화되어야 하고 좀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박정희가 상상되어야 한다.>>

박근혜 의원과 대선주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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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