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2박3일 평양 방문 첫날인 10월 2일이 특히 좋았다.

이날의 여러 장면 사진이 내년 2월 이후 그가 살 김해 봉하마을에 들어설 사저에 걸릴 것이다. 그 중 어떤 사진이 가장 크게 뽑혀서 걸릴까?

노 대통령이 평양으로 향해 청와대를 떠날 때 말한 대국민 인사에는 ‘평화’라는 말도 있지만 그보다 ‘역사’라는 말이 의미를 지녔다. “역사가 저의 책임으로 맡긴 몫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시기 우리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토대로 제게 맡겨진 책임만큼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평양에 2일 상오 11시30분께 도착한 노 대통령은 도착성명을 냈다. “이제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이 땅에 평화의 새 역사를 정착시켜 나가야 합니다. 평화를 위한 일이라면 미루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해 나갑시다.”

노 대통령에게 이번 평양행은 ‘역사’를 만들고 싶은 길이었다. 큰 성과가 없더라도 그에게 “역사에 남을 만한 사진찍기”는 되는 길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개성~평양고속도로 수곡 휴게소에 도착하자 최승철 노동당 통일부 부부장에게 농담하듯 말을 건넸다.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속으로는 말했을지 모른다. “역사에 어찌 기록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은 것은 이제 사실(史實)이다.”

그는 상오 10시18분께 20여분간 수곡 휴게소에 머물며 그의 개인 역사에 기록될 이날의 감상을 적었다고 했다.

<<어릴 때 이런 산, 고향 뒷산에서 뛰놀고 소도 몰고 들어갔다. 그러나 지금은 고향 뒷산 같은 경우도 숲이 많이 울창해져서 하늘도 안보이니 재미가 없다. 마을 가까운 숲은 낮아야 하고 큰 나무는 듬성듬성 있는 것이 좋다. 그래야 산에서 따고 뜯고 캐고 잡고 할 수 있다….그래서 (고속도로를) 오면서 근린 생태 숲이란 개념을 메모하며 왔다.>> 노 대통령에게 이번 평양행은 ‘자기 역사에의 회고’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잊어 먹었을지 모른다. 2003년 1월 취임 1개월을 앞둔 대통령당선자 시절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제임스 케리, 북한특임대사 찰스 프리차드가 함께 그를 찾아왔다. 프리차드(1950년생, 워싱턴 한국경제연구소 소장. 브루킹스 수석연구원. 케도 이사장. 클린턴정권 때 백악관 아시아담당국장)는 7월에 낸 <실패한 외교-북한이 핵폭탄을 가지게 된 슬픈이야기>에서 당시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폄하,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한미 관계는 반미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노 후보가 당선되기 전 또 부시는 그때의 야당후보인 이회창 후보에 기울었었다. 노 후보에는 경험 부족을 들어 좀 멀어져 있었다.

노 당선자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미국이 단독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결정적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노 당선자는 그때 ‘한반도가 어느 날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쌓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두려움은 어디서 왔을까?

미국 다트머스대 정치학과 부교수 데이비스 강은 <‘북핵퍼즐-관여전략(engagement strategic) 논쟁(원저 2003년 11월, 번역 2007년 9월)>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한국은 지난 10여년간(1993년부터) 대북관계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그것이 실패할 경우 그 비용은 미국이 아닌 한국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한반도에 반미감정이 존재한지는 오래되었는데, 종종 그 정도가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자율성을 더 얻기를 바라는 노무현이 2002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노무현의 당선은 단지 감정적 반미가 불거진 의미만 갖는 게 아니다.

남북한 모두 미국의 대(對) 한반도 정책에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한미관계가 갈수록 경직되어 가는 것을 단지 일시적인 현상으로 무시하거나 최근 북한의 호전적 행동(2002년 10월. 농축우라늄 핵만들기 시인 등)을 비이성적으로 과장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무시와 과장 사이를 오가며 지난 2년 동안 전체적인 비전을 주지 못했는데, 남한과 북한의 주민들은 바로 그런 미국의 잘못된 정책을 염려하고 있다.>> 데이비드 강 교수는 노 당선자의 ‘두려움’을 ‘염려’로 요약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10월 3일 상오 김정일 위원장과 오전 회담을 마친 후 회담을 요약했다. “솔직히 벽을 느끼기도 했다. 불신의 벽이었다….개성공단의 성과를 얘기할 때도 역지사지(易地思之ㆍ 처지를 바꾸어 생각함)해야겠다…남쪽이 신뢰를 가지고 있더라도 북측은 아직도 남측에 여러 가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어떻든 북에서 ‘두려움’, ‘염려’를 느끼지 않은 것은 ‘역사적’이 아닐까?

노 대통령은 찰스 프리차드, 데이비드 강 교수 등과 ‘평양에 갖다 와서’라는 주제로 정담을 나누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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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