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2002년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씨의 올 대선출마 선언은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가 보여준 자신감의 강도가 대통령이 되고 싶은 마음보다 모자랐다.

이런 때에 엉뚱하게 1950년 11월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중공군 참전에 따른 ‘가장 추웠던 전쟁’(어제와 오늘 10월 30일자)이 떠 올랐다. 이번 대선후보등록이 11월 25일 마감되는데, 1950년의 그날은 어떠했을까.

‘가장 추웠던 겨울(The Coldest Winter)’의 저자 핼버스탬은 영하20도까지 내려간 평북 운산 남복 군우리에서 미 2사단 36탱크중대 4소대장으로 참전한 샘 메이스 소위를 통해 그때 상황을 전했다. 26살이던 메이스 소위는 2차 대전 발지전투(1944년 12월) 때도 탱크부대에 있었다.

핼버스탬이 80세가 넘은 메이스를 인터뷰해 ‘가장 추웠던’에 쓴 1950년 11월 25 ~ 12월 8일 ‘한반도의 겨울’을 요약해본다.

<<광산촌이 많은 웨스트 버지니어 태생의 메이스는 아버지가 폐쇄공포증 환자였기에 광부도 안 하는 허드렛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를 여러 곳에서 다녀야 했다. 그래서 4학년 때 학교를 나와 1939년 15살에 군에 입대했다.(그 때는 그 나이에도 입대가 가능했다.) 기마부대가 탱크부대로 바뀌면서 메이스는 탱크병이 됐다.

… 1944년 12월 모두가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독일군은 미군을 기습했다. 독일 팬저 탱크는 그가 소속한 탱크중대의 탱크 17대 중 2대만 남기고 모두를 파괴했다.

평북 군우리와 발지를 비교해 보면, 발지에서도 짙은 안개와 추위가 있었으나 그런 상황이 이틀 연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군우리는 그곳보다 더 심하다. 갈수록 더 추웠고 그 다음날도 추웠다.

그 이유는 군우리에서 순천으로 중공군의 포위를 벗어난다 해도 탱크에게 순탄한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탱크는 홀로, 목적도 없이 남쪽으로 후퇴하는 듯 했다.… 군우리에 중공군의 박격포 공격을 받으며 도착한 것은 11월 24일 저녁. 11월 25일 새벽 0시 10분께 중공군의 4.2반격포가 미군의 탱크와 보병들 위에 쏟아졌다.

협곡의 좁은 도로에 있는 탱크주변마다 산 위에서 내려온 중공군이 50여명씩 달려들었다. 메이스는 전차포와 기관총으로 그들을 섬멸했다. 3일 동안을 이렇게 싸움한 끝에 그는 순천-평양의 교차로인 구장동에 도착했다. 2사단 38연대의 집결소에 보이는 병력은 65명뿐이었다.

메이스는 6대의 탱크에 각각 15명씩을 태우고 평양으로 후퇴했다. 병사들은 탱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알고 대처하지만 장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메이스는 느꼈다.

특히 사단의 참모들은 중공군이 어떤 군대인지조차 몰랐다.… 12월 초에 흩어졌던 2사단은 평양에 집결했다. 평양 역은 군인, 피난민으로 법석이었다.

이들은 남쪽으로 가자는 열광 속에 아무거나 훔쳤다.… 12월 7일 영등포에 도착한 메이스는 생각했다. “그 동안의 진격 같은 후퇴에서 나는 미 육군에 대해 창피함을 느꼈다. 우리를 지휘하는 상관들은 그것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다시 싸울 것이다. 우리가 좋은 지휘를 받는다면 잘 싸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난 창피나 부끄러움은 지나간 일이 된다.”>>

1950년 11월의 한반도는 그랬다. 오늘도 춥고, 내일도 추운 그런 겨울이었다. 어디로 전쟁이 향할까 몰라 더욱 추웠다.

2007년 11월은 어떨까? 더 춥게 느껴질까. 유권자들의 표심은 화끈 달아 오를 것 같지 않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메이스 소위나 핼버스탬은 1950년 11월을 더욱 춥게 한 것은 맥아더사령부, 8군, 2군단 참모들의 현장파악능력 부족, 루머 같은 정보의 난립, 중공군 전술ㆍ전략에 대한 무지에 있다고 본다.

1960년 12월 15일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국무장관, 국방장관, CIA국장 등이 참석한 그의 마지막 안보회의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1960년 5월 26일 소련 상공에서 미사일 공격으로 추락한 U-2기에 대한 반성이었다.

“우리 정보기관 조직이 (잘한 일은 자랑하고 실패한 일은 남에게 떠넘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재임 8년간 나는 이를 개선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나는 후임자에게 ‘잿더미라는 유훈’(Legacy of Ashen)을 남기게 됐다.”

대선에 나선 후보들은 아이젠하워의 ‘잿더미’와 핼버스탬의 ‘가장 추운…’의 의미를 느껴야 한다. 낙선하더라도 ‘좋은 싹’, ‘따뜻한 겨울’을 유권자들에게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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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