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갑산: 한정식 전문점.

산수갑산: 돼지갈비, 삼겹살, 곱창전골 등 전문 식당.

산수갑산: 장어전골, 메기매운탕, 꿩 샤브샤브 전문점.

산수갑산: 오리고기, 닭백숙, 메기매운탕 전문.

‘산수갑산’이라는 말이 꽤 좋은 말인가 보다. 지역 곳곳에 ‘산수갑산’을 좋은 상호로 여기고 간판을 단다. 소비자인 손님도 그 이름에 이끌려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업소에 다녀와서는 그 맛을 못 잊는 글을 남긴다.

․ 가을 속 산사, 식사는 사찰 밑쪽에 있는 '산수갑산'에서 오리불고기를 먹었다.

․ 산수갑산 정식이다. 음식 냄새가 강하지 않아 와인 마시기에 좋았고…… .

․ 산수갑산 순댓집: 이곳에서 순댓국을 먹은 후 다른 곳은 가기 힘들어졌다.

․ 산수갑산: 한국 음식이 그리워. 산수갑산 가면 좋아.

‘산수갑산’이 이토록 사랑받는 까닭은 뭘까. ‘산수’와 ‘갑산’으로 떼어 놓고 보자. ‘산수(山水)’는 “산과 물”이라는 뜻으로, 경치를 이르는 말이다. 아름다운 산수를 유람하며 화폭에 담은 것이 ‘산수화(山水畵)’요,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이 ‘산수가(山水歌)’다. 이를 병풍으로 만든 것이 ‘산수병(山水屛)’이요, 그 모습을 본떠 꾸민 정원이 ‘산수정원(山水庭園)’이다. ‘산수’가 곧 ‘아름다움’으로 통하는 셈이다.

‘갑산(甲山)’의 경우 우선 ‘갑(甲)’이라는 말에 압도된다. ‘갑’은 ‘처음’, ‘제일’, ‘첫째’, ‘첫째가다’를 뜻한다. 성적이나 실적을 ‘갑·을·병……’으로 평가할 때 ‘갑’이 모든 평정의 으뜸이 된다. 그리하여 ‘갑’은 ‘갑산’을 ‘최고의 산’, ‘일등 산’이라는 뜻으로 여기게 한다.

이렇듯 풍광 좋고 운치가 가득한 뜻으로 인식돼 온 말이 ‘산수갑산’이다. 과연 그런 뜻일까. 사실대로 밝히자면 ‘산수갑산’은 ‘삼수갑산’을 잘못 발음한 것이다. 삼수(三水)와 갑산은 함경남도에 있는 오지다. ‘삼수’는 압록강의 지류에 면해 있고 ‘갑산’은 개마고원의 중심부에 있는 까닭에 두 곳 다 귀양지로 손꼽혀 올 만큼 교통이 불편하다.

우리 속담에도 ‘삼수갑산’이 등장한다. 자신에게 닥쳐올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라도 어떤 일을 단행할 때 “삼수갑산에 가는 한이 있어도”, “삼수갑산을 가서 산전을 일궈 먹더라도”라고 말한다. 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어떤 피해가 있더라도 절대로 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삼수갑산을 갈지언정 중강진은 못 간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삼수갑산’이라고 제대로 표기하고 장사했다면 그 간판에 이끌릴 손님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귀양지 이름을 딴 음식점으로 누가 돈 줘 가면서 발걸음을 하겠는가. ‘산수갑산’, 간판으로 쓰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정확히 발음하자, ‘삼수갑산’이라고.

끝으로 시인 김억이 남긴 ‘삼수갑산’을 음미해 보자.

삼수갑산 가고지고 / 삼수갑산 어디메냐 / 아하, 산 첩첩에 흰 구름만 쌓이고 쌓였네.

삼수갑산 보고지고 / 삼수갑산 아득코나 / 아하, 촉도난이 이보다야 더할쏘냐.

삼수갑산 어디메냐 / 삼수갑산 내 못 가네 / 아하, 새더라면 날아 날아 가련만도.

삼수갑산 가고지고 / 삼수갑산 보고지고 / 아하, 원수로다, 외론 꿈만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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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국어생활연구원 원장 gimhuijin@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