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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교수와 한용운 시인의 '만남'


2007년 10월 한국시인협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평론가 10인이 선정한 ‘10대 시인’에 선사(禪師) 만해 한용운(1879-1944)이 들어갔다.

200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최남선) 발표 100주년을 맞아 시인 100명이 추천한 ‘현대시 100편’ 중에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년9월 나옴)이 포함됐다.

알만한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1958년생.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에서 칸트 연구로 박사(86-92), 그리스도 신학대학 조교수(95-98) 해직,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2001), 전남대 철학과 부교수(2005)>. 서구 철학을 넘어 우리 나름의 철학을 캐낸 김 교수의 저서 ‘서로주체성의 이념-철학의 혁신을 위한 서론’(2007년2월 나옴)의 기틀 중 하나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 중 3편의 시였음을 일반인들은 더욱 모른다.

한용운이 46세 때 백담사에서 쓴 88편의 시 가운데 김 교수가 ‘만남’을 가슴에 새기는 첫 편이 ‘당신을 보았습니다’이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변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철학과 함께 서양고전문헌학을 배운 김상봉 교수는 이 시와의 ‘만남’을 요약했다.

<<…만해 한용운 선사는 우리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대에 자기 상실의 슬픔 품속에서 만나는 자기실현의 노래를 불렀다.… 쏟아지는 눈물도, 남에 대한 격분도, 스스로의 슬픔도 모두 타자 속에서 자기를 상실한 영혼의 고통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만해는 자기를 상실한 슬픔이 결코 뜻 없는 슬픔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스스로의 슬픔 속에서 당신을 보았다는 말로 형상화하고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그것은 존재의 진리요, 참된 자기이다. “나는 곧 당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 속에서 너 속에서 자기를 버리는 자는 보다 큰 자기를 얻을 것이다. 이것이 타자 속에서 자기를 잃어버린 정신의 희망이다.… 한용운의 시에 가장 많이 나오는 어휘는 ‘없음이다”. ‘없다’는 말의 끝에 ‘스스로 슬픔’이라는 말이 따르는 것이다. 이 ‘없음’과 ‘슬픔’이 타자의 고통에 보다 쉽게 기꺼이 갈 수 있게 한 힘이다. 그 타자는 씨알(민중)의 모습이다.>>

김 교수는 철학박사답게 ‘당신은 보았습니다’의 ‘당신’에서 타자의 고통, 슬픔 속에 자기 스스로 ‘슬픔’을 자각하고 타자를 서로 자기화, 주체화하는 ‘서로주체성의 이념’을 열었다고 쓰고 있다.

이런 김 교수의 분석에 ‘한용운 님의 침묵’(1997년 나옴)을 엮은 서울대 인문대 한계전 교수(서울대 사범대 국어과, 서울대 문학박사 ‘한국현대시론’저자)는 ‘당신…’을 요약했다.

<<일반적으로 만해 시에서 ‘님’은 단순한 연인에서 조국, 절대자들, ‘그리운 모든 것’으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만큼은 ‘가신님’(당신)의 의미가 ‘상실된 조국’으로 고정된다. ‘갈고 심을 땅’이 없고 ‘민적’이 없는 현실은 명백히 ‘잃어버린 조국’을 상징하는 것이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는 그러한 현실을 앞에 두고 절대자에 귀의할 것인지, 현실을 외면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인의 인각적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 민적을 잃고 정조를 능욕당하는 우리민족이 처한 현실은 일제의 폭력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독립을 지키지 못한 무능 탓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남에 대한 격분은 슬픔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김상봉 교수는 “이런 ‘당신’이란 타자를 통해 ‘슬픔’을 느끼고 ‘자기’를 찾는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런 자기 찾기는 타자와의 만남에 있고 한용운과 만남은 그에게 ‘서로주체성의 이념’을 주었다는 것이다.

서정시보다 생각을 일깨워 주는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김 교수의 ‘서로주체성의 이념’을 읽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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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8/02/05 14:14




박용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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