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1월22일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팔순 출판기념회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참석하고도 건배석상에 오르지 않은 일이다.

건배는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제의로 방우영 회장, 그의 부인 이선영 여사, 좌우로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이명박 당선인, 방상훈 조선일보 회장이 했다.

왜 YS는 참석하고도 건배석에 오르지 않았을까? 물론 1월29일자 ‘어제와 오늘’ 칼럼(“팔순맞은 YS는 좌파의 숙주인가”)이 나오기 전이기에 이 칼럼이 문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날 잔치는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는 회고록 출판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왜 건배석에 YS는 오르지 않은 것일까.

대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방 회장의 회고록 6장에는 ‘내가 본 대통령들’이 있다. 거기 나온 ‘대통령들’과 YS가 시대정신 1월호에서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와 한 인터뷰 속에 나오는 ‘대통령들’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다.

방 회장의 ‘대통령들’ 중 박정희, 김영삼 두 대통령을 요약해본다.

<<65년 초 월남 파병을 주장하는 박 대통령을 만났다. 박 대통령이 직접 연필을 들고 종이에 계산을 해가면서 조목조목 설명하는데 수학적으로 매우 치밀했다. 머리가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5ㆍ16이 난 직후 흑석동(방일영 조선일보 사장집)에 왔을 때 그를 처음 봤다. 깡마른 체구의 박정희는 새까만 얼굴에 반짝이는 눈과 하얀 치아만이 유난히 돋보여 한눈에도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그는 언론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었다. ‘신문이란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비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 그의 언론관 이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후 신문사 발행인들이 위로차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20여분간 아무 말 않고 담배만 피워 대니까 누구도 말을 꺼낼 엄두도 못 냈다.… 앞에 사람을 앉혀놓고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면서 표정 하나 바꾸지 않는다. 매서움을 넘어 소름 끼칠 정도다. 그날도 나는 박 대통령의 그런 표정을 보면서 “저 사람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 회장은 1956년 사회부 기자로 문교부를 출입했다. 그때부터 처음 국회의원이 된 YS를 알았다. YS에 대한 요약이다.

<<…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새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할 것은 비판하기 시작하자 정권과의 관계가 점점 더 껄끄러워졌다. 그가 금융실명제를 밀어붙일 때 나는 신중하자는 입장이었다.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을 만나 “돈은 물 흐르듯 해야 한다. 억지로 막으면 탈이 난다.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금융실명제는 실시돼야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게 밉게 보였는지 1994년 추경석 국세청장을 시켜 조선일보를 세무사찰했다. 그는 배짱이 있고 고집이 세면서도 감성이 예민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비위에 안 맞으면 못 참았다. 김대중(DJ) 씨와의 관계에도 이런 성격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김영삼씨가 앞뒤 재면서 치밀하게 일을 계획하는 점은 부족했지만 자신의 정치적 감각을 믿고 속전속결로 일을 해치우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칠 때도 나는 좀 놀랐다. 김영삼씨를 오래 알아왔지만 그렇게까지 세게 나올 줄은 몰랐다. 독하긴 독한 사람이라고 다시 보게 했다.>>

방 회장이 보기에 박정희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독한 사람’이다. 박 대통령 후에 ‘독한 대통령’이 된 YS는 박 대통령을 어떻게 보았을까.

김일영 교수와의 인터뷰 속 박 대통령을 요약한다.

<<당시(1960년 5월15일 밤) 주한미국 대리대사 마샬 그린이 와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시내에 쿠데타 병력은 얼마 안 들어왔어요. 그때 장면 씨가 미국대사관에 전화만 걸었다면 미국이 쿠데타를 막을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연락이 없으니깐, 미국이 판단하기를 지금까지 소식이 없으면 죽은 것이라고 보았던 것 같아요. 이것이 우리나라의 불행을 부른 겁니다. 무엇보다 잘못은 박정희의 쿠데타예요. 나는 박정희가 우리나라에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박정희를 고도의 사기꾼으로 생각해요. … 박정희 정권은 기본적으로 부패정권이고 도둑정권이에요.… 박정희도 굉장히 부패했어요. 부산일보, MBC, 경북의 영남대도 빼앗았습니다. 이것이 박정희 소속으로, 육영재단 소속으로 된 것입니다. 우리 국민이 박정희가 이런 것을 모릅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청와대 근처에 안가를 12채나 가지고 있었어요.>>

방우영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인상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평가의 차이는 어떻게 좁혀질까. 두 분이 팔순 대담을 한번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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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