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별세한 김병관 동아일보 전 회장(1934년생)은 때마침 이날 나온 지명관 한림대 전 석좌교수(1924년생)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세계로 발신한 민주화 운동’ 내용을 보았을까? 와병 중에 지 교수가 이런 책을 쓸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까?

만약 김 전 회장이 이런 소식을 알았다면 장례위원회는 ‘한국으로부터…’를 그의 영전에 바쳐야 옳았다.

한겨례 김동훈 기자는 2월 25일자 부고 기사에서 썼다. <<87년에는 동아일보가 특종보도한 서울대생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이 6월항쟁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이를 두고 동아일보쪽은 “고인(김병관 전 회장)은 당시 군사정권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성역 없이 보도하도록 기자들을 격려하는 등 동아일보가 언론자유를 쟁취하고 수호하는데 늘 앞장 섰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평가도 있다. 일각에선 김 전 회장이 동아일보 수장에 오른 뒤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 체제에 비판적인 야당지 이미지가 실종되고 보수적인 색채가 두드러졌다고 지적한다.>>

김 기자의 ‘다른 평가’에 대해 지명관 교수는 ‘한국으로부터…’의 제1부 ‘동아일보가 전한 것’에서 또 다르게 보고 있다. “1973~1988년 일본 월간 ‘세까이’에 실린 T.K라는 칼럼니스트가 전한 그 때의 서울 언론의 처참한 모습이 있다”면서 동아일보의 그때 모습을 회고하고 있다.

T.K는 바로 사상계 주간이었던 지명관 교수였고 지 교수는 유신이 나자 도쿄에 머물며 “72년 11월부터 88년 3월호까지 ‘한국통신’을 썼다.” 2003년 9월호 ‘세까이’에서 오까보또 아쓰시 편집장은 지 교수와 대담을 갖고 T.K가 지명관 교수 임을 밝혔다.

지 교수는 이번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내며 88년 3월에 낸 ‘고별의 인사말’을 다시 쓰고 있다.

<<1972년 11월부터 시작한 일이었으므로 참으로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승리를 마음속으로 빌며 활동했습니다만, 지금 저는 투쟁으로 상처를 입고 조금 높은 언덕 위에 누워서 아직 처참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언덕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는 그리고 이제는 현실정치에서는 벗어나기로 생각하고 다음과 같은 말로 매듭지었다. ‘사상가는 절대적인 가치를 구한다고 한다면, 현실정치에서는 상대적인 것을 구한다.’

지 교수가 ‘한국통신’에 쓴 15년간의 원고는 2만장. 그 중 3백여 장이 이번에 나온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에 실렸다.

이중 T.K 지병관 교수가 기억할만한 것으로 뽑은 몇 대목을 요약한다.

<<1977년 3월2일 아사히신문은 함석헌(1901~89년 2월)이 ‘환상의 제2구국선언’을 썼으나 당국에 압수되었다고 보도했다. 3월 7일자에는 도쿄 한일연구연락회의에서 이 선언문이 밀유입되었다고 썼다. 서간 형식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쓴 이 선언은 아사히신문에 났다. “책임을 지고 용퇴하십시오. 귀하는 국가의 주권을 스스로 강탈한 것이니 책임을 지는데 조금도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이때 일대용단을 내리고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 국민으로 하여금 ‘전화위복’의 의무를 평화롭게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됩니다.”>>

<<1977년 6월 8일자 아사히신문은 ‘민주구국선언(76년3월1일)’ 기초자로 알려져 구속된 문익환 목사(1918-94년1월)가 부인에게 전해준 ‘마지막시’가 나왔다. “나는 죽는다./나는 이 겨레의 허기진 역사에 묻혀야 한다./두 동강난 이 땅에 묻히기 전에/나의 스승은 죽어서 산다고 그러셨지/아~/그 말만 생각하자/그 말만 믿자 그리고/동주<同住 (1917-1945) 시인.문익환과 용정 영생중 동문>와 같이 별을 노래하면서 이 방에도 죽음을 산다.”>>

‘한국통신’의 T.K는 1983년 6월 10일자 동아일보에서 ‘김영삼 23일간에 걸친 단식중단하다’라는 기사를 보았다. 또한 ‘김영삼씨의 단식’이란 사설도 봤다. 지 교수는 “그(김영삼)의 단식과 주변의 대응은 한마디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썼다.

아사히신문은 이 사설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한국 민주화의 저류’라는 사설로 받아썼다.

<<국민 사이에 그러한 민주화를 기대하는 커다란 저류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무엇보다도 정권의 자리에 있는 측이 솔선하여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정권의 차원을 넘어 나라의 생존과 안정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 강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민주.개방사회를 기본으로 설정하는 것은 한국이 널리 국제사회에서 체제나 이념을 달리하는 나라들과도 연대관계를 쌓아가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것이 한국 자신의 안정에도 공헌할 것이다.>>

동아일보사는 3월6일 김병관 전 회장의 장남 김재호 부사장(1964년생)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김성수(1891-1955) 창간 사장부터 4대째가 동아일보를 맡은 것이다.

김재호 사장은 지명관 교수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꼭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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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