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방송은 5월 4일 ‘더욱 노골화 되는 반공화국 책동’이라는 논평을 통해 우리정부의 F-15K 전투기 21대의 추가 도입 계획등을 비난 했다.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은 외세와 야합하여 민족의 머리위에 핵전쟁의 위협을 몰아오고 있는 이명박 전쟁정권을 반대하는 반전, 반괴뢰 투쟁을 더욱 과감히 벌여 나가야 한다”고 선동 했다.

물론 북한 언론의 대남 논평원들은 북한에서 태어나 36년을 산 탈북시인 장진성 씨가 4월 18일 서울에서 낸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라는 시집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1965년 1월4일 새벽 캔맥주 10개를 마시고 DMZ을 넘어간 미기갑 1사단 8기병 연대. 3대에 찰리 중대, 수색 소대 타격 분대장 찰스 로버트 젠킨스 중사(1940년생)가 3월 25일 낸 자서전 적 북한체류기 <억지로 공산주의자가 되다:나의 탈영. 군사재판. 그리고 억류된 40년>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의 신문들이 장진성 시인의 71편의 시 중 ‘내 딸을 1백원에…’ 에 초점을 맞췄지만 장 시인은 북한의 오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모든 원인과 책임이 있음을 분노에 싸여 썼다. 그는 김 위원장을 ‘희세(稀世)의 장군’으로 요약했다.

<<그는/군복무를 한 적 없어/병사도 아니었지만/혼자서 훈패 달고 승진하고/스스로 큰 별 얹고 임명한/군 최고 사령관.

그는 과시/남들과 차원이 달랐다/항상 전쟁 중이어서/자신의 리무진은 야전 차/가는길은 모두가 전선(戰線)길/인민 또한 한 사람도 빠짐없이/자신의 전사(戰士)라 불렀다.

취미도 사냥/음악도 진군가/옷도 단 한 벌/군복 같은 사복으로/외국의 전선 길도 이어가며/구걸까지 통이 크고 볼 만했다.

그에겐 평화도 없었다/언제나 처형하며 승리했고/예리한 감성으로/제국주의 포위와/북침의 매일을 참다 못해/끝내는 울화통 터트려/핵실험도 감행했다.

정치도 유례없는/희한한 선군정치/명령으로 나라를 통솔하며/최고사령관답게/최고 빈국(貧國) 만들엊고/인권도 총대로 해결하여/세계악(惡)의 최고가 됐다.

강성도 부족하여/강성대국 자처하며/총 한방 쏘지 않고/적군이 아니라/아군 300만을 굶겨 죽인/김정일은 희세의 장군>>

이제는 서울의 동아일보에 탈북 시인이란 타이틀 대신 장진성(시인)이라는 필명으로 시론을 기고 하는 그는 1996년과 2002년 두차례나 김 위원장을 만났다. 노동신문에 일곱 차례나 김 위원장이 그의 시를 내게 했다.

그는 1999년 평양 동대원구역 시장에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딸을 1백원에 파는 현실”을 보고 김 위원장에 분노 하고 2004년 이번 시집의 원고 메모를 지닌채 남으로 왔다.

젠킨스 중사의 ‘억지로 공산주의자…’의 공동 저자인 전 타임 도교 지국장 짐 프레드릭은 그를 요약 했다.

<<내가 그를 접촉 한 것은 책을 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그를 책의 자료로 생각 했다. 그러나 5개월을 그가 사는 니이가다 현 사도 섬에서 인터뷰 하면서 ‘1백% 독특한 인간임을 알게 됐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에는 “속죄하는 마음, 달콤하고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것”이 있다.

베트남으로 1 기갑사가 이동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그는 탈영 했다. 1980년에 소가 히토미라는 사도 섬에서 어머니와 같은 날 납치된 간호보조원을 만났다. 65-80년 까지 그의 북에서의 억류생활은 하루 10~11시간씩 김일성, 김정일, 주체사상을 공부 하고 1주일에 한번 자기비판을 하는 것이었다.

이데올로기나 공산주의의 동조자가 아닌 북한에서 러시아를 통해 다시 미국으로 가려던 그는 나와의 긴 인터뷰의 결론으로 “문자 그대로 거대한 정신착란에 빠진 감옥”이라고 북한을 느꼈다고 했다.

젠킨슨 중사의 책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192쪽 책의 10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가장 험악한 표현은 2004년 1월1일 설날에 술에 취해 내뿜은 ‘개 새끼(ga-sicki)’ 발언이다. 그때는 두 딸을 둔채 히토미가 2002년9월 일본으로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북을 떠난 후 북한과 일본이 그녀의 북한으로의 귀국을 둘러싸고 날카로울 때다.

이를 요약 하면-<<나는 정례 대로 나를 감시하는 요원들을 불러 설날 잔치를 했다. 잔치가 끝난후 술에 취한 나는 벽에 걸린 김정일의 사진을 가리키며 외쳤다. “만약 저 ‘선 오브 비치’가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은 함께 있었을 거야” 나는 ‘개식끼’(개)라는 가장 저주스런 말을 뱉었다. 그건 김일성과 김정일을 향한 도저히 생각할수 없는 저주였다. 즉각 처형의 범죄였다. 큰 딸 미카(1983년생. 그때 평양 외국어 대학생)가 내 손목을 잡고 끌었다. “아버지, 입을 닫지 않으면 그들은 당장 아버지를 쏴 죽일 거에요.”

그러나 요원들은 가만히 있었다.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른겠다>>

젠킨슨과 두 딸은 2004년 7월 자카르타를 거쳐 일본 사도 섬에 정착했다.

‘희세의 장군’. ‘선 오브 비치 지도자’ 인 김정일 위원장 주변의 논평원 들은 장진성 시인, 찰스 로버츠 젠킨슨의 책을 꼭 읽길 바란다. 그래야 김 위원장이 ‘희세의 장군’, ‘개 식키’의 칭송(?)을 듣게 하지 말아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네트워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