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식별 가능한 정형외과의 암호 '골반'

공룡은 이미 오래전에 멸종했다. 인간이라는 포유류가 지구상에 존재하기 이전에 사라져버린 공룡을 우리네 아이들은 아직까지도 장난감으로 만지작거리며 그 존재를 복기한다. 마찬가지다. 직접 공룡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세계 곳곳에서 공룡뼈 화석은 발견된다. 이를 바탕으로 그 이름도 생소한 공룡들이 책과 학문 안에서 오롯하게 부활한다. 그래서 고고학은 대단한 학문이라고 정형외과 전문의인 필자는 늘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사람의 뼈를 통해서는 과연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정형외과 의사 입장에서 수없이 반추해 본 궁금증이다. 필자는 지난해 <따뜻한 병원& 착한 달리기> 칼럼에서 '정형외과 의사는 골반뼈로 미래를 점친다'란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척추 X-ray사진을 찍으면 골반뼈도 함께 나타나는데, 골반뼈 부근에 나이테 같은 흔적이 보인다. 이 흔적으로 청소년들의 향후 성장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바로 '리서 사인( risser sign)'이라는 전문용어였다.

이번에는 뼈와 골반뼈의 또 다른 특성을 언급해볼까 한다. 뼈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물론, 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인물들의 실존 또는 본인의 DNA확인을 위한 단서들만 건재하다면 뼈는 분명 본인 인증을 위한 충분한 증거물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도 사망 여부를 놓고 논란이 식지 않는 유병언이라는 인물에 얽힌 이런저런 사연들도 뼈를 통해서 밝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뼈에도 종류는 엄청나게 많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필자도 뼈의 이름을 가끔씩 까먹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쉽게 풀어 설명해 보자. 얼굴뼈로는 얼굴의 생김새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팔과 다리 뼈를 보면 그 인물의 키와 체격 등을 유추해낼 수 있다.

그렇다면 골반뼈로는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도 추론이 가능한 것이 아마도 성별 구분일 것이다. 다시 말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골반뼈의 생김새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골반뼈로 알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

그건 바로 사람마다 각각 다른 해부학적 지표인 '골반 입사각(pelvic incidence)'이라는 것이다. 골반 입사각은 사람의 척추를 앞이 아닌 옆에서 절단했다고 가정하고 바라본 시상면 (sagittal plane) 균형에 중요한 척추-골반 지표이다. 시상면 상의 만곡(활처럼 굽음) 의 모양을 결정하고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골반 입사각의 각도와 척추 경사 (sacral slope), 골반 경사각 (pelvic tilt) 3가지의 지표에 따라서 요추 전만, 흉추 후만의 각도가 결정되고 척추의 균형이 유지 된다. 즉 골반입사각이라는 정보를 통해 그 사람의 평소 생활습관이나 자세 나아가 직업 까지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추측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척추 경사가 크게 되면 허리가 뒤로 굽게 되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서 흉추도 앞으로 굽는 경향이 있게 된다. 반대로 척추 경사가 평균보다 작게 되면 허리의 굴곡이 작아지게 되고, 흉추부위도 펴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 골반뼈를 앞에서 보면 성별을 알 수 있고, 옆에서 보면 그 사람의 자세와 태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CSI라는 전문용어가 최근엔 미국 드라마의 유행 때문인지 곳곳에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상식적으로 알아둬야 할 것은 바로 골반뼈도 중요한 정보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지문과 DNA로만 본인인증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골반뼈도 주민번호 못지않은 정보의 원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