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대통령·대선주자 관계 설정, 박근혜모델? 노무현모델?

[닮은 듯 다른 정치]
박근혜·김영삼, 긴장관계로 대권 쟁취… 노무현은 협력 모델
이회창·이인제·김근태 등 차별화 전략 실패
박 대통령과 김무성 등 여권 대선주자 관계는
[김광덕 뉴스본부장 칼럼] 개헌론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줄다리기를 보면서 데자뷰(deja-vu)란 말이 생각났다. 데자뷰는 이미 본 것을 뜻한다. 현재 일이 과거에도 경험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정치, 역사에서는 데자뷰 현상이 자주 벌어진다. 한 철학자가 “역사적 사건은 두 번 반복된다”고 말한 게 실감난다. 그러나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는다. 전개 과정은 닮은꼴이지만 결과는 완전히 딴판인 경우가 흔하다.

청와대-김무성 개헌 갈등과 정치의 데자뷰 현상

이번에 개헌론을 놓고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이에 형성된 긴장 관계를 보면서 몇 가지 풍경이 오버랩됐다. 우선 이명박정부 당시 세종시를 놓고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 벌어진 충돌이 떠오른다. 노태우정부 당시 내각제 합의 각서 유출 파동 때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당무 거부의 배수진을 쳤던 장면도 스쳐 지나간다.

최근 개헌론 샅바싸움의 주요 장면을 다시 돌려 본다. 여당의 비박계 의원들과 야당 의원들이 개헌 공론화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개헌 논의로 국가 역량을 분산시키면 경제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고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러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6일 중국 상하이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박 대통령의 경고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는 언급이었다. 청와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김 대표는 바로 다음 날 “실수였다. 대통령에게 사과한다”고 물러섰다. 이를 두고 ‘하루 만에 꼬리를 내렸다.’ ‘절묘한 치고빠지기 전략이다’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는 나흘 만인 21일 다시 강하게 쐐기를 박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김 대표를 정면 겨냥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번 갈등의 불씨는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김태호 최고위원이 당직 사퇴 선언을 했다. 김 최고위원은 ‘개헌’과 ‘경제 활성화’ 중 어느 것을 명분으로 내세워 사퇴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했다. 명분 제시가 오락가락한데다 최고위원직 사퇴 번복 가능성까지 흘러나와 정치권 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박근혜와 김영삼, 긴장의 '호랑이 전략'으로 유리한 고지

이명박정부 출범 2년 쯤 된 2010년 2월에도 여권 내부에 격돌이 있었다.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던 이 대통령이 2월 9일 충북도청 업무보고에서 “강도가 왔는데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며 ‘강도론’을 꺼냈다.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갈등을 거론한 것이다, 이는 세종시 문제에서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친박계를 겨냥한 발언으로 비쳤다. 박근혜 전 대표는 즉각 “집 안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맞받았다. 이에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마이크를 잡고 ‘박 의원’이라고 호칭하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박 전 대표 측은 “문제가 있으면 있는 대로 처리하면 될 것 아니냐”고 되받았다. 이에 이 대통령은 “('강도론’ 발언)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논란 중단을 당부했다. 그 뒤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면서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다.

대통령과 대선주자의 긴장 관계를 말할 때 노태우정부 당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모델을 빼놓을 수 없다.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YS는 통일민주당을 이끌고 노태우의 민정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합당을 결행했다. 3당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의 대표를 맡은 YS는 그해 11월 내각제 합의 각서가 언론에 유출되며 위기에 봉착하자 오히려 ‘(민정계) 음모론’을 주장하며 당무 거부란 초강수를 뒀다, 그는 고향 마산에 내려가 칩거하면서 극적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YS는 3당합당을 할 때 '호랑이를 잡으려 호랑이굴에 들어갔다'는 명분을 내건 적이 있다. 따라서 현역 대통령과 긴장·대치 전선을 형성했던 YS의 전략은 '호랑이 사냥' 모델로 불린다.

과거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에 맞서 강수를 두면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하지만 YS에게 정치를 배운 김무성 대표는 이번에 청와대에 더 이상 맞서지 않고 완전히 뒤로 물러섰다. 대통령 임기가 3년 4개월 이상 남아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대통령과 청와대에 맞서서 '호랑이 전략'을 편다고 해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까. 과거 사례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김 대통령에게 각을 거의 세우지 않았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후보가 되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투박한 스마일 전략'이 통한 것이다. 노 후보는 '낡은 정치' 타파를 외쳤으나 정치적으로 DJ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반면 DJ와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차별화를 시도했던 이인제 후보는 낙마하는 일이 벌어졌다. 상도동계 출신으로서 YS의 전략을 따랐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이회창, 이인제의 차별화 실패...노무현은 DJ에 각 세우지 않아

노무현정부에서도 노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공공주택 분양 원가 공개 등에 대해) 논쟁하자”며 각을 세웠던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은 대선 레이스에서 일찌감치 멀어졌다. 오히려 노 대통령과 적정 수준의 협력 관계를 보였던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이 여권의 대선 후보가 됐다.

또 김영삼 정부 당시 ‘YS와의 차별화’를 핵심 전략으로 채택했던 이회창 후보는 대선후보가 됐지만 본선에서는 야당의 김대중 후보에게 패해 ‘선거에 의한 첫 정권교체’ 사례를 만들어냈다. '호랑이 전략'의 대표적 실패 사례이다,

대통령과의 관계보다 민심과 코드 맞추기가 더 중요

대통령과 여당의 유력 주자 간에는 매번 긴장과 협력의 복잡한 함수관계가 있었다. 호랑이 전략과 스마일 전략 중 어떤 관계 설정이 대선주자에게 더 유리할까? 정답은 없다. 정치적 상황, 대통령과 대선주자의 지지 기반, 타이밍, 명분 제시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성적표는 천차만별로 나올 수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에서는 청와대와 어떤 관계를 설정하는 주자가 유리한 고지에 오를 것인가? 최근 개헌론에 대해 김무성, 김문수, 정몽준 등 여권 대선주자들의 반응이 각양각색으로 나오는 것은 청와대와의 관계 설정 전략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이번 개헌론 대응도 대선 전초전이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대선주자는 전략의 초점을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대통령과의 관계만 중요한 게 아니다. 시대정신을 읽고 민심 흐름에 코드를 맞출 줄 아는, 고도의 전략이 요구된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19년 11월 제2802호
  • 이전 보기 배경
    • 2019년 11월 제2802호
    • 2019년 11월 제2801호
    • 2019년 10월 제2800호
    • 2019년 10월 제2799호
    • 2019년 10월 제2798호
    • 2019년 10월 제2797호
    • 2019년 09월 제2796호
    • 2019년 09월 제2795호
    • 2019년 09월 제2794호
    • 2019년 09월 제2793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영주, 산사의 추억 영주, 산사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