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특별 기고] 정운찬 전 총리 "한국경제 악순환 벗어나 동반성장으로 함께 멀리 가자"

양극화 심화-가계부채·중소기업 부실 누적-내수 부진-성장 둔화 악순환
맥킨지 보고서,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에 비유
동반성장 열매는 단기적으로 경기침체 완화, 장기적으로 지속 성장의 기초
  • 정운찬 전 국무총리
[정운찬 전 국무총리 특별기고] "동반성장이 뭔가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나는 2010년 12월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 1년 4개월 동안 활동했다. 2012년에는 (사)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출범은 ‘동반성장’(shared growth) 용어의 대중화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 발주 시작에 기여하였다. 한편 동반성장연구소는 월례포럼 개최, 자료집 발간, 연 40~50회의 특강 등을 통해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에 힘쓰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민간위원회를 표방하지만, 대통령이 위원장을 임명하고 예산도 일부 정부에서 나오는 반관반민 기관이다. 그리고 대·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만 다룬다. 반면 동반성장연구소는 순수민간 기구이고 대·중소기업 간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부문의 동반성장을 고루 다루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동반성장에 특정 색깔을 칠해 그 진정성과 핵심을 호도하려는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동반성장의 기치 속에 들어있는 올바른 알맹이가 다양한 논객들의 색깔론과 목소리에 가려 국민들만 혼란스러워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양극화 심화- 가계부채·중소기업 부실 누적- 내수 부진- 성장 둔화- 양극화 심화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초 본격적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 이래 선(先) 성장ㆍ후(後) 분배에 입각한 경제성장이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전략이었다. 성장과 효율의 극대화가 지상 목표였고 분배와 형평은 부차적인 고려 사항이었다. 그 결과 가계 부문과 기업 부문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소득 및 부의 분배가 악화되었다. 가계부채는 1,100조원에 이르고 중소기업은 불공정 거래를 감수해야 하는 위치로 전락했다.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은 오늘날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양대 문제다. 수출 대기업의 뛰어난 성과도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수출과 내수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그리고 성장과 일자리 간 연계성이 크게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소비를 그리고 중소기업의 부실은 투자를 위축시켰다. 소비와 투자의 위축은 결국 성장 둔화와 양극화 심화를 가져온다. 이는 [양극화 심화 ⇒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 누적 ⇒ 내수 부진 ⇒ 성장 둔화 ⇒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한국 경제에서 구조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의식은 아직 선 성장ㆍ후 분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확립된 불공정한 분배 관행과 기존 이해관계의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이든 영세민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한국 경제라는 배에 동승한 이상, 더는 실기하면 모두에게 공멸이다.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에 비유한 맥킨지 보고서(McKinsey Global Institute, "Beyond Korean Style: Shaping a New Growth Formula," April 2013)의 평가는 동반성장의 맥락에서 볼 때 의미심장한 경고로 해석된다.

동반성장은 전체 파이를 키우되 분배는 좀 더 공정하게 하자는 것

동반성장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선 성장ㆍ후 분배라는 낡은 전략으로는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불공정 분배의 관행을 개선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자는 뉴노멀 성장전략이 바로 동반성장이다. 동반성장은 결코 잘사는 사람 몫을 빼앗아 못사는 사람에게 주자는 것이 아니다. 전체 파이를 키우되 분배는 좀 더 공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사회’, ‘꿈과 도전이 가능한 사회’를 추구한다. 그래서 동반성장의 개념은 업종 간, 빈부 간, 계층 간, 남녀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도시와 농촌 간, 남한과 북한 간, 선진국과 후진국 간 등의 동반성장으로 그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동반성장은 20세기와 구분되는 21세기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Zeitgeist)이다. 동반성장을 이루지 못하면 경제 전체가 붕괴하여 사회를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성공하면 한국경제는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다. 나아가, 동반성장은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철학이자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근본 가치이기도 하다.



동반성장의 방법은 초과이익 공유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등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 초과이익 공유(협력이익 배분)를 실행해야 한다.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얻으면 그것의 일부를 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 해외 진출, 또는 고용 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시혜적인 것이 아니다. 보상적인 것이다. 초과이익의 적지 않은 부분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대표적 불공정거래인 납품가 후려치기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둘째,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선정하여 대기업이 더 이상 지네발식 확장을 못 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들의 신규 참여를 금지하거나 사업 확장을 자제케 하는 업종을 선정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키워주자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끝으로,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조달할 때 예컨대 80%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안들은 기존의 게임 규칙 아래에서라면 대기업으로 흘러갈 돈이 중소기업에 합리적으로 흘러가도록 교정하는 조치들이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중소기업 위주의 신산업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이다. 좋은 학생들을 중소기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학자금 융자에 혜택을 준다거나 군 복무에서 혜택을 줄 수도 있다. 또한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 국가기관, 예를 들면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대학, 중소기업 등과 협력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의 연구·개발(R&D) 자금 배분을 대기업 위주에서 중소기업 위주로 바꾸어야 한다.

동반성장의 열매는 경기침체 완화와 지속 성장의 기초

동반성장으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단기적으로 경기 침체가 완화되고 장기적으로 지속적 성장의 기초가 된다. 한국 경제는 인구가 5천만 명이 넘으면서도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여 세계 전체로 7개국(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밖에 없는 50-30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국가신인도 측면에서도 일본·중국과 같거나 더 높아졌다. 그러나 투자가 부진하여 잠재성장력이 떨어졌다. 대기업은 돈은 많으나 투자 대상이 부족하고 중소기업은 투자 대상은 있으나 돈이 없다. 따라서 투자 증진을 위해서는 대기업에는 첨단·핵심 기술을 많이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중기적으로는 R&D의 방향 전환, 즉 D에서 R로의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교육혁신을 통해 국민 전체의 창의성을 높여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대기업으로 흐를 돈이 합리적으로 중소기업에 흘러가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면 단기적 성장을 이루고 지속적 성장의 기초를 쌓을 수 있다. 또 동반성장은 여러 가지 양극화로 인한 사회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중소기업과 거기서 종사하는 종업원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동반성장은 약자들의 생활을 개선함으로써 사후적 복지 수요를 줄이는 사전적 복지 제도의 역할도 수행한다.

결론적으로 동반성장은 한국 경제의 밝은 면은 더 밝게, 어두운 면은 덜 어둡게 할 것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정부·대기업·중소기업의 삼위일체가 동반성장의 핵심 동력

쇼펜하우어는 “모든 진리는 첫째 단계에서 조롱당하고, 둘째 단계에서는 심한 반대에 부딪히며, 셋째 단계에서야 비로소 자명한 것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동반성장론이 지난 수년 간 쇼펜하우어의 첫째와 둘째 단계를 거쳐 이제는 셋째 단계로 접근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 각 경제주체가 상호 공존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동반성장은 영영 이상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 위에 대기업의 선도적 변화와 중소기업의 자조가 어우러진 삼위일체가 동반성장의 핵심 동력이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 프로필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프린스턴대 경제학박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장-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현)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6월 제2830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6월 제2830호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