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극장쇼 전성시대 이끌어'뜨거운 안녕' 쟈니리와 라이벌… 라이브·음반만으로 정상 우뚝데뷔음반 들고 웃던모습 생생

정원 2004년 첫 독집을 들고 환한 모습.
대중가요계의 큰 별이 졌다. 1960년대 극장쇼 무대 슈퍼스타 정원(본명 황정원)이 지난달 28일 서울 포이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고인은 대표곡 '허무한 마음'을 비롯해 '미워하지 않으리' '무작정 걷고 싶어', '왓츠 아이 세이(What'd I Say)' 등 팝 번안 곡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고 1966년에는 MBC 10대 가수상을 비롯해 50여개의 대중가요 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최근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고인은 2014년 '제2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으며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 해 년 말, 새해 덕담을 기원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셨고 금년에도 공연을 구상하셨을 정도로 건강하셨던 정원선생님의 갑작스런 부고소식은 당황스럽다. 세상을 떠나신 날 부고 문자가 당신의 핸드폰으로 직접 날라 와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가수협회에서 보내온 확인 문자를 보기 전까지 선생님의 부고를 믿지 않았다. 2004년 겨울, 정원선생님의 음악여정을 기록하는 장시간 인터뷰를 했었다. 그때 1966년에 발표한 데뷔음반을 들고 웃으시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어느 새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가을시즌송의 명곡인 '허무한 마음'으로 유명한 정원은 '뜨거운 안녕'으로 유명한 쟈니리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60년대 극장쇼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가수였다. 그의 대표곡 '허무한 마음'과 '미워하지 않으리', '내 청춘' 등 그가 남긴 600여곡 중 방송 차트에 올랐던 곡은 한 곡도 없다. 그는 방송출연 없이 라이브 무대와 음반만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특이한 가수였다. 그런 점에서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원조라 불릴 만하다. 2012년 3월에는 KBS 라디오 '주현미의 러브레터'에서 두 분을 모셔 함께 노래하는 방송까지 했었는데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선생님의 활동을 제대로 알려주는 부고기사가 단 하나도 없어 풀 스토리를 3부작 추모특집으로 소개하려 한다.

60년대는 민간방송의 개국 러쉬로 방송의 비중이 중요해졌지만 극장쇼는 여전히 방송에 버금가는 비중 있는 무대였다. 패티김, 이미자, 박재란, 최숙자, 최희준, 김상희는 말이 필요 없는 60년대 스타들이지만 극장쇼의 진정한 스타는 정원, 쟈니리, 트위스트김이었다. 주류 방송가수가 아닌 정원이 당대 각종 신문, 잡지와 전국의 방송국에서 50여개의 가요상을 휩쓸며 군림했던 것은 당대의 독특한 환경 때문이었다. 정원이 발표한 모든 음반들이 지금도 대중가요 마니아들의 수집 아이템으로 손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원의 본명은 황정원이다. 그는 일본 유학을 다녀와 외자청(현 조달청) 공무원을 지낸 황종호씨와 원산의 명문 루시고녀 출신인 최복녀씨의 5남 1녀 중 장남으로 1941년 2월 23일에 금강산 마을로 유명한 강원도 고성군 장전읍 장전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말을 타고 사냥과 음악을 즐겼던 호걸이었고 건장했던 어머니는 농구 선수 출신이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정원은 어린 시절 축음기로 일본 노래들을 많이 들으며 성장했다. 쾌활하고 남성적인 아이었던 정원은 친구들과 어울려 전쟁놀이를 즐겨했다.

정원 트위스트김 등 60년대 극장쇼 가수들 노래가 수록된 영화'폭발 1초전'OST 1967년 음반.
해방 후 대지주였던 할아버지가 친일파로 몰려 서울 신설동으로 월남했다. 서울 동신국민학교 3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발해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 피난민 수용소의 수정국민학교에 다녔다. 이후 공무원 부친의 잦은 전근으로 광주 중앙국민학교를 거쳐 여수 동 국민학교를 졸업하는 등 무려 6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녔을 정도로 정원의 유년기는 격변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초등학교시절 공부를 잘해 우등상은 물론이고 운동에도 재능을 보여 축구선수로도 활약을 했던 모범생이었다.

여수중학에 진학하면서 문제아로 변해 갔다.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한 그때부터 공부보다는 여수 시민극장과 동방극장의 지붕을 뚫고 들어가 남인수, 현인의 공연과 악극단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 극장 쇼를 보니 너무 좋았어요. 당시엔 남인수, 최숙자의 트로트보다 리듬이 있는 현인, 윤일로, 안다성, 손시향, 도미의 노래가 너무 좋았습니다. 나이가 든 지금은 트로트도 좋아졌지만요."(정원)



글ㆍ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