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잡이 하다 동춘 서커스 입단전국 떠돌던 쇼단서 이탈 상경… 구봉서 쇼 시작 미8군 가수 돼청재킷 즐겨입어 '양아치 클럽'

(1편에서 이어옴) 집안 식구들 몰래 상경한 정원은 체육 특기생으로 한양공고 전기과에 입학했지만 아버지가 밀수를 하다 적발되어 고향으로 내려갔다. 가세가 기울었던 당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둔 방황의 시기였다. 그때 음반과 라디오를 통해 폴 앵카, 냇 킹 콜, 미소라 히바리, 프랑크 나가이등 외국 가수들의 노래를 접했다. 이후 여수 KBS 라디오 밴드가 카바레에서 연주를 할 때 뒷일을 봐주다 무명가수생활을 시작했다. 율동을 곁들여 팝송을 노래한 정원은 여수에서 제법 노래 잘 하는 가수로 알려졌다.

1960년 4ㆍ19혁명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여러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나온 뒤 여천군 화양리로 피신해 멸치잡이를 했다. 어느 날, 순천에 동춘 서커스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쇼 단원이 되었다. 전국을 돌다 경기도 오산 서정리 비행장 인근에서 쇼 단을 이탈해 무작정 상경했다. 처음 한양공고 친구들 집을 전전했지만 곧 서울역에서 리어커를 끌며 2원짜리 꿀꿀이죽으로 연명하며 부랑자들이 머무르는 남대문 아편골에서 기거하는 힘겨운 세월을 보내야했다.

그러던 중 남대문 시장 자유극장의 극장 쇼를 보았다. 무대 위에 나온 김상국이 '블루 벨리'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여수의 선배인 트럼펫 주자 최정문을 찾아 갔다. 그의 주선으로 밴드마스터 한창길을 만나 구봉서 쇼의 오프닝 무대에 올라갔다. 잔뜩 긴장하고 노래를 시작하는데 한 관객이 참지 못할 야유를 보내 젊은 혈기에 객석으로 뛰어 내려가 싸움을 벌였다. 시작부터 망신이었지만 화양의 오디션을 어렵게 통과해 미 8군 가수가 되었다. 그때부터 강숙자가 단장인 새나라 쇼, 백봉호가 단장인 서울쇼, 백갑진이 단장인 부산 쇼 등에 객원가수로 '수지 큐' 등 경쾌한 팝송을 레퍼토리로 조금씩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당시 시민회관은 최고의 무대. 그는 하루 4회 공연에 700원(당시 택시 요금이 30원)을 받는 무명 가수였다. 1966년 어느 날 낙원극장 공연 때 이미자의 첫 남편인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정진흡의 주선으로 쓰리보이가 사회를 보던 꿈에 그리던 시민회관의 이미자 쇼 무대에 설 기회를 잡았다. 당대 인기 가수들이 총망라됐던 공연이었지만 그날따라 관객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정원의 순서가 왔다. 잔뜩 겁을 먹고 긴장해 있는데 반주를 맡은 최장권 악단이 악보를 요구하며 반주를 거부했다. 출연을 포기하려는데 시민회관 단장의 도움으로 겨우 무대에 올랐다. 무명 가수의 서러움을 겪으며 무대에 오르자 오기가 발동했다.

강한 인상을 주기위해 얼굴에 검은 색 칠을 하고 도리구치 모자를 쓰고 와이셔츠를 밖으로 빼 묶는 특이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우선 빠른 템포의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하운드 독'을 슬로우 템포로 변형해 특이하게 노래해 보았다. 앵콜이 터져 나왔다. 이에 당황한 밴드는 앵콜곡 연주를 반대했지만 썰렁하던 객석에서 모처럼 좋은 반응이 나오자 쇼 단장은 반주를 지시했다. 신이난 정원은 핸드 마이크를 들고 객석과 무대를 오르내리며 노래를 부르다 무대에 드러누우며 열창했다. 그날 정원은 무려 4차례의 앵콜을 받았을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단숨에 게런티 3천원의 가수로 떠올랐다.

그날 시민회관 객석에는 가수들의 출연 교섭을 위해 상경한 지방극장의 쇼단장들이 즐비했다. 무명가수 정원의 정열적인 무대를 본 지방극장 쇼 단장들은 홀딱 반해버렸다. 이후 시민회관 무대의 단골 가수가 된 그는 극장 쇼의 슈퍼스타로 떠오르는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극장 쇼 무대에서 12번씩 앵콜을 받은 가수는 정원과 미 8군 여가수 최진이가 있었다. 재건 열기가 높았던 당시, 관객들은 느린 곡 보다는 빠르고 경쾌한 노래를 좋아 했기 때문.

당시 청바지에 청재킷을 즐겨 입었던 정원, 트위스트 김, 쟈니 리는 속칭 '양아치 클럽'으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최대 라이벌은 쟈니리. 관객들은 "누가 노래를 더 잘 하냐"며 경쟁을 부추겼다. 서울 서부역 앞 봉래극장. 팝 가수들만 출연했던 쇼에 처음으로 함께 출연을 해 팬들의 관심이 고조되었다.(3편으로 계속)



글.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